[생활칼럼 '박성희의 괜찮은 수다'] 주름과 표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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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잔치는 끝났다"고 쓴 시인이 있거니와 나 역시 서른살 때는 "늙었다" 싶었다.
"마흔살이면 인생 다 살았겠다"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마흔은 좋은 나이다.
주름이 생기고,군살이 붙고,자신감도 줄지만 대신 사물의 밝고 어두운 면을 함께 볼 줄 알고,사람과 세상 무서운 것도 깨닫고,그래서 주변사람 소중한 것도 알게 된다.
그러나 마흔부터는 왠지 쓸쓸해지는 날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의 황금기로 정신없이 지내도 거울 속에 비친 나이든 얼굴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을 가져다 준다.
게다가 여성은 나이에 대한 압력을 남성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TV뉴스 남녀 앵커의 나이차에서 보듯 여성에겐 연륜 경험에 따른 판단력과 지혜보다 젊음과 미모가 우선시되는 수가 많은 까닭이다.
일하는 여성뿐이랴.
누구라도 이때쯤이면 세월을 잡고 싶어진다.
주름 개선,모공 축소,칙칙한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은 물론이고 피부박피술 주름제거술 성장호르몬 요법까지 젊음을 되찾아준다는 모든 것에 눈길이 간다.
성형외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자신보다 훨씬 젊어 뵈는 친구나 연예인의 얼굴을 보면 유혹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최근의 보톡스 열풍은 그같은 욕구가 드러난 단적인 예인 셈이다.
주름을 없애려면 얼굴에 칼을 대야 했던 예전과 달리 불과 5~10분만에 끝나는 데다 맞은 지 30분이면 주사자국도 안보일 만큼 멀쩡하고 만에 하나 부작용이 생겨도 보톡스 효과가 사라지는 4~6개월이면 원 상태로 회복된다는 건 큰 망설임 없이 얼굴을 내미는 요인이 된다.
보톡스의 효과는 놀랍다.
눈가나 이마의 주름은 정말이지 감쪽같이 사라진다.
실제 요즘 나이든 탤런트들 얼굴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탱탱하다.
90년대말 국내에 처음 도입됐을 당시엔 눈가와 이마 정도에만 사용됐지만 지금은 사각턱 교정 등 얼굴 전체에 쓰인다.
갸름한 얼굴이 소원이면서도 턱을 깎는 게 무서워 망설이던 사람들에게 주사 몇 대로 네모공주를 면할 수 있다는 건 떨치기 어려운 매력인 때문이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눈가와 이마에 맞을 경우 주름은 펴지지만 눈 주위 근육이 마비돼 표정이 없어지고 눈썹도 치켜지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눈도 크게 떠지지 않거나 눈두덩이 내려앉은 것처럼 되는데다 눈가의 웃음이 사라져 사나워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원래 표정이 적은 사람은 문제가 덜하지만 다양한 표정을 짓던 사람은 몹시 어색해진다.
주사를 맞은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해 장모와 어머니께 똑같이 시술해도 장모는 "사위 덕에 젊어졌다"며 좋아하는데 비해 어머니는 "언제 내 얼굴로 돌아오느냐"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도 지난 4월 미국 FDA가 보톡스를 성형용으로 공인하자 전같으면 학기중이어서 다소 한가했을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주름을 펴서 탄력있는 얼굴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 요법을 다소 꺼리던 성형외과에서조차 보톡스 전문의(그동안 많이 시술해본)를 따로 채용해 진료한다고 할 정도다.
피부박피술에 이어 성장호르몬요법과 보톡스주사가 유행하는 건 어떻게 해서라도 젊어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탓일 것이다.
실제 보톡스주사로 주름을 편 뒤 한결 자신감이 생겼다거나 성장호르몬을 사용한 후 노화에 따른 우울증이 치료돼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만 같은 처치라도 사람에 따라 반응이나 결과가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꾸준한 운동과 올바른 식생활,편안한 마음가짐 없이 인위적인 처치만으로 젊음을 유지할 수 없음도 물론이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