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왜 강한가] (20.끝) 이건희 회장 인터뷰..기술경영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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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미래에 사업구조나 경영구조에서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기업이 돼 있을 것입니다.글로벌 시장에서 1,2등을 하지 못하는 회사나 기업은 문을 닫고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따라 생겨나는 회사나 사업도 있을 것입니다"
국내외 신문및 방송과의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왔던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 단독으로 서면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경영철학과 삼성전자의 경쟁력,미래상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인공위성이 단계별로 엔진이 떨어지면서 대기권을 돌파하듯이 삼성도 세계 일류가 되려면 한 단계 더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지요.
"먼저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석달 동안 삼성전자에 보내 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삼성이 진정한 일류기업이 되려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강점을 들어 보라면 삼성전자는 부품사업과 디지털 가전,통신사업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기업인데 이런 사업부문들이 서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시스템 플레이가 잘되는 편입니다.
큰 흐름과 변화를 읽고 외부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영자들이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강점일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꼽고 있는 것은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애사심과 헌신적인 노력,그리고 자율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엔지니어 이건희 회장'이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지금은 내로라하는 세계 일류기업들이 기술개발도 같이 하고 마케팅도 같이 하자고 하지만 초기에만 해도 기술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돈 주고도 기술을 사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니 제가 나서서 일본이나 미국의 기술자들한테 고개 숙여가며 깍듯이 모시고 하나하나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 자신이 어려서부터 새로운 물건을 보면 뜯어보고 원리를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새로운 기술,좋은 기술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든 들여오려고 욕심을 많이 부렸습니다.
경영자부터 현장직원들까지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발적으로 기술개발과 공정개선에 힘을 쏟으면서 이제는 일류급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갖추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93년에는 '변해야 산다'는 말씀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지난해와 올해는 '강소국(强小國)'과 '미래에 대한 준비'란 말을 유행시키셨습니다.
삼성만의 얘기가 아니라 나라경제 전체에 대한 말씀으로 보이는데요.
"국가의 힘이란 이제는 경제력입니다.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은 글로벌 1등 기업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선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삼성이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 모두가 1등 기업이 되자는 것입니다.
기업이 잘 되면 수출이 늘어나고 고용도 확대되는 등 국가경제가 활성화되고 국민 모두가 혜택을 받게 되는 상승효과가 있습니다.
노키아가 핀란드를 먹여 살리듯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대기업이 10여개 정도만 나오면 지금과는 훨씬 다른 모습이 될 것입니다."
-지난 93년 소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고 하셨는데 지금 삼성의 모습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보는지요?
"IMF 경제위기 내내 국민들이나 기업들이 모두 고생을 했는데 삼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를 강조한 것이 이제 와서 그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공위성이 발사후 1단계, 2단계로 추진 엔진이 떨어져 나가야 대기권을 넘을 수 있는 것처럼 삼성이 세계 일류가 되려면 다시 한번 그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 단계 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융합의 시대를 맞아 가장 역점을 두는 사안은 무엇입니까?
"삼성도 지금은 반도체, TFT-LCD,CDMA 등 10여개의 세계 1등 제품을 갖고 있지만 산업구도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앞으로 5∼10년 뒤에 뭘 먹고 살지를 계속 고민해왔고 작년부터는 그룹의 CEO들에게도 미래를 준비하자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는 무엇보다 지적 경쟁력이 중요한데 지난 20세기가 경제전쟁이라면 21세기는 두뇌전쟁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국가나 기업간의 국제경쟁은 결국 인적 자원의 질이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 준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과 기술이라고 보고 연구개발,마케팅 등 각 분야의 우수한 인력을 국적에 상관없이 확보해 나가고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래 삼성을 이끌어갈 핵심인력은 어떻게 육성할 계획인가요?
"기업의 경쟁력이나 가치는 그 기업에 우수한 인재가 얼마나 많고 적으냐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어떤사람이 핵심인력인지 그 자격과 조건을 임직원들에게 알려 주고, 여기에 해당되는 핵심인력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고 중요한 직책을 맡겨서 각자가 스스로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삼성그룹,삼성전자의 미래상을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사업구조나 경영구조가 지금과는 상당히 바뀌겠지요.
글로벌 시장에서 1등,2등에 들어가지 못하는 회사나 사업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따라 새로 생겨나는 회사나 사업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고객과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그런 기업 이미지를 갖추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삼성을 이끌어오면서 어렵게 결단을 내렸던 때를 소개해 주신다면.
"지난 93년에 신경영을 추진하면서 '새집 짓는 것보다 헌집 고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당시 세계 경제의 축이라는 로스앤젤레스 프랑크푸르트 도쿄 등지에서 밤새워 가며 위기감과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느끼게 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또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임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은 고통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연봉제와 성과배분제도가 시행되면서 직원간 위화감 조성 및 사기저하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패러다임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그 전에는 고생을 해도 같이 하고 상을 받아도 같이 받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일 더한 사람, 일 잘한 사람이 급여도 더 많이 받고 인센티브도 받아야 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 같습니다.
삼성의 연봉제도 처음에는 갈등이 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도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이 받아보자 하는 자극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이런 제도들이 삼성 임직원들에게는 동기부여와 자기계발에 도움을 주는 것 같고 계속하다 보면 기업 경쟁력은 물론 개인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직원들의 충성심이 감소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과거에는 맹목적으로 회사에 충성을 하고 회사는 반대급부로 평생직장을 보장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개인은 자기 능력에 따라 자기 몫을 다하고 회사는 개개인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윈윈(win-win)'의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건강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건강 문제로 주위 분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드린 적이 있어선지 지금도 건강을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염려해주시는 덕분인지 건강은 아주 좋습니다.
몇 차례 장시간 회의를 했지만 아무 지장이 없는 걸 보면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벼운 조깅이나 산책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시간 날 때마다 손자와 함께 놀아주고 있는데 그 즐거움 때문인지 마음도 편안해지고 건강도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특별취재팀=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강현철,이익원,조주현,김성택,이심기,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