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화가...'화려한 死後' .. '박수근'

"친애하는 밀러 부인,……보내드린 소품 두 점의 가격은 '노인'(1962)이 40달러이고 '두 여인의 대화'(1962)가 50달러입니다.…" 한국 현대미술품 경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수근 화백(1914∼65)이 지난 60년대초 자신의 그림을 좋아했던 미국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현재 1점당 4억원을 웃도는 박 화백의 소품들이 그때에는 불과 40∼50달러에 팔렸다는 얘기다.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쓴 연구서 겸 평전 '박수근'(시공사,1만2천원)에 나오는 내용이다. 최근 경매에서 '아기 업은 소녀'가 5억5백만원에 팔려 한국 현대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기록을 경신한 데 비하면 가히 천양지차다. 이 책에서 오 관장은 박 화백의 삶과 시대적 특성,그의 예술세계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존의 연구성과와 평가를 종합·분석하는 한편 소홀히 취급된 부분은 더욱 소상히 밝히려고 애썼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박수근은 화려한 사후의 조명에 비해 생전에는 너무나 불우했던 화가였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고 혼자서 그림공부를 하느라 갖은 고생을 다 했다. 별도의 화실도 없이 서울 전농동,창신동 집의 마루를 화실로 삼았고 화가라면 누구나 소원하는 개인전 한번 열어보지 못했다. 또 독학으로 공부하다 보니 화단의 주류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된 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같은 삶이 박 화백의 남다른 예술세계를 형성했다고 오 관장은 분석했다. 정규 미술학교를 거치지 않음으로써 화단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일찍이 자기만의 화풍을 개척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데생과 완성된 작품 등 1백79점의 도판도 실려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