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국이 주는 교훈..崔運烈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자본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듯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투명경영의 표본처럼 여겨졌던 미국 기업에서 엔론사태 같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기업의 분식회계를 적발해 정확한 정보를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할 공인회계사들이 오히려 피감사법인과 결탁해 회계분식을 은폐해오다 결국 기업과 회계법인 모두 법인으로서의 청산절차를 밟게 되고 말았다. 동일 회계법인이 철저한 차단벽을 쌓지 않고,회계감사와 컨설팅을 동시에 실시한 필연적인 귀결인지 모른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가장 선진화된 기업지배구조를 갖췄다는 미국 기업에서 오히려 CEO들이 자신의 사적 이윤만 추구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공장 근로자 평균 연봉의 4백11배를 받아갔다 한다. 지난 10년 동안 일반 근로자들의 연봉은 36% 상승한 반면,CEO들 연봉은 3백40%가 상승했다 한다.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도덕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메릴린치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사내에서는 유망하다고 보지 않는 주식을 일반투자자에게 매수를 권유해 소송을 당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기업지배구조 위기'라는 제하의 특집에서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견제와 균형을 지켜야 할 기업의 이사와 경영진,투자은행의 애널리스트 및 직원,회계감사인,변호사,감독당국 등이 결탁을 일삼고 있다"면서 "자본주의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기업인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배구조가 선진화돼 있고 투명성이 우수하다는 미국도 별 수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기업의 독특한 현실을 무시하고 미국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제도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님이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위험하다. 미국제도가 나쁜 것이 아니라,제도로도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지나친 탐욕의 산물일 것이다. 제도가 완비된 나라에서의 이러한 일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제도 보완에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최근 정권말기로 접어들고,각종 스캔들로 정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 재계 일부에서는 사외이사제도를 근본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거나,투명성 장치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라고 본다. 그다지 지분율이 높지도 않은 대주주가 오너인양 전횡을 일삼아 왔던 것이 과거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 특징이다. 이사 경영진 감사 모두를 대주주가 마음대로 임면해 경영에서의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과정에서 무리한 투자도 많았고,투명하지 못한 경영의 결과를 초래해 우리는 경제위기를 맞고 말았다. 기업의 오너는 전체 주주다. 한주를 갖는 주주는 한주에 해당되는 오너이고,10% 지분을 소유한 주주는 10%에 해당되는 권한을 행사하는 오너일 뿐이다. 10%의 지분을 갖는 대주주가 경영에 직접 참여할 경우,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전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기업지배구조의 틀이 짜여지고 있다. 전문성과 독립성을 겸비한 사외이사로 하여금 기업의 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게 하고,대주주 경영자가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아니 되옵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아직 역사가 일천하고 대주주들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해 제도도입의 효과가 극대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을 서둘러야 할 시점에,옛날 제도로 후퇴한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회계나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감사위원회나 외부감사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또 증권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주가조작이나 허위공시 등 불공정거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분식회계,주가조작 및 허위공시 등을 대상으로 한 집단소송제는 반드시 도입돼야 할 것이다. wychoi@bo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