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와 안전보장..金慶敏 <한양대 국제정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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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김밥말이에 게맛살이라는 재료를 넣기 시작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게맛살은 주로 명태살로 만들어진다.
게맛살이라는 새로운 음식재료가 나타나기 시작한 배경에는 북방외교라는 외교정책의 전환이 계기가 됐는데,이 이야기는 10여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1989년 한국의 언론보도를 보면 '수산 가공시설을 갖춰 해상 공장,떠다니는 섬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공모선(工母船) 개척호가 북방정책 덕택으로 12년만에 황금어장 오호츠크해로 항진중'이라는 내용이 있다.
국제정치의 변화가 먹거리 내용까지 바꿀 만큼 국제정치의 움직임은 우리 생활 가까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게맛살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치열해지는 세계화 물결은 어쩔 수 없는 국가생존전략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비록 냉전이 종식됐다고는 하나,미국과 일본이 하나의 축을 이루고,중국이 견제의 대상이 되는 동북아 역학구도는 여전히 갈등과 대립의 양상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다소 주춤해 있는 러시아도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초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한반도의 긴장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고 하지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간의 군사력은 여전히 막강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흔히들 이 물음에 대한 일반적이고도 공통적인 처방은 '동북아 안전보장협력체'에 대한 출범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말은 좋으나 이는 대단히 이상적(理想的) 발상일 뿐 그간의 진척상황을 보면 사뭇 실망스럽다.
역사가 증명해 주듯 튼튼한 경제력이 없으면 뒷걸음치는 국방정책과 열등적 외교로 국가보전의 방책을 구상할 수밖에 없듯이,한국의 미래는 통일 이전이나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번영된 국가의 창출 없이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국가생존전략은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의 경제상호의존도를 더욱 긴밀히 추진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남북관계가 이 정도라도 긴장이 해소되고 교류와 협력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을 성취하지 못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북아의 역학구도에서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탁상공론에 그칠 일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지난 4월 영종도와 송도,그리고 김포매립지 4천만평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를 실현시키겠다는 계획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외국기업의 투자확대를 위해 영종도와 송도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서부축(西部軸)을 2020년까지 관광·레저 도시 및 국제금융업무지구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고,다국적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본부 및 국제업무의 거점으로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이 계획대로 추진돼 한국이 국제물류이동의 허브기지 역할을 하려면 남북한간의 경의선과 경원선이 반드시 연결돼야 한다.
시베리아를 관통해 유럽과 연결되는 물류수송의 거점으로서의 한국은 역동적인 중국경제와 경제대국 일본을 이웃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정책만 펼치면 얼마든지 경제번영의 중심축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한국이 짜임새 있는 계획과 발빠른 움직임으로 중국 상하이보다 앞서는 동북아 번영의 중심축을 구축하게 된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군사력을 확충하는 것 보다 훨씬 안정적인 안보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로의 경제이익이 얽혀있는 상호의존과 공영의 역학구도를 만들게 되면 동북아안보협력체에 대한 구상도 자연스레 현실화될 것이고,이는 군비축소와 평화창출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실현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안보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한국의 미래를 등거리외교와 수세적 국방정책에 머물러서는 희망이 없다.
21세기를 맞아 국가번영의 행운이 융성하는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는 국민적 단합과 정치적 비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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