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9일자) 환율 급락 방치할 단계 지났다

원화 환율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난주만 해도 달러당 1천2백50원대에서 등락하던 원화 환율이 엊그제는 1천2백40원대가 무너지더니 어제는 일시 1천2백20원대를 기록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하락세다. 전윤철 경제부총리까지 직접 나서 "속도가 문제다.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연일 시장개입 가능성을 밝히고 있는데도 이에 아랑곳 없는 급락세여서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수일간의 원화 동향에 비상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은 원화 환율이 달러뿐만 아니라 엔화 등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균형상태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천2백50원대로 내려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원화 강세라기 보다는 달러 약세'라는 관점에서 외환시장을 평가하는 견해들이 주류였던 것이 사실이다. 전세계적으로 달러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원화 만의 문제는 아니며 따라서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환율이 1천2백20원대로까지 떨어지고 엔화와의 동조현상마저 무너지면서 이같은 논리도 이제는 설명력을 잃고 말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한때 1천2백20원대를 기록한 어제도 엔화는 달러에 대해 1백24엔 후반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뿐이었다. 만일 원화가 엔화 등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까지 강세기조를 유지한다면 그 결과는 수출경쟁력의 급격한 상실로 나타날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내수 일변도의 경제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수출마저 경쟁력을 잃고 만다면 그 결과 역시 너무도 분명하다. 더구나 강력한 수출 경쟁국인 중국은 달러당 8.3위안의 고정환율을 유지하면서 인위적인 저평가 상태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율이 이렇게 가파른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정부의 외환수급 조절 실패에도 적지않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올들어 1분기만 하더라도 공기업과 은행권의 외자유치 등이 급증하면서 26억달러나 유입초과 상태라는 것이고 보면 최근들어 환율이 급속하게 하락하고 있는데는 정부 측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불요불급한 외자유치가 급증하면서 환율이 급락하고 그 결과로 엉뚱하게도 수출경쟁력만 떨어진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제 와서 부랴부랴 외환시장에 대한 직접개입까지 검토하는 모양이지만 이와는 별도로 외환수급 상황 전반을 정밀하게 재진단하고 충분한 중장기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