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 시장 '과열 양상'] '돈, 왜 구조조정시장에 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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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높은 가격을 써낼 줄 몰랐다. 보고를 받고 다시 한번 알아보라고 할 정도였다."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변동걸 부장판사는 최근 끝난 쌍방울 입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종 입찰자격이 주어진 2개 컨소시엄이 모두 들어와 주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지만 예상을 깨고 모두 3천억원이 넘는 가격을 써낸 것이다.
쌍방울의 당초 예상가격은 2천6백억원선이었다.
쌍방울의 사례는 최근 구조조정시장이 얼마나 달아올라 있는지를 보여준다.
'벤처 대박'을 노렸던 뭉칫돈들이 벤처 거품이 꺼진 뒤 갈 곳을 잃자 고수익을 노리며 구조조정시장, 특히 상장된 기업 인수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 왜 몰리나 =한마디로 높은 수익률 때문이다.
쌍방울이 단적인 예다.
이 회사의 현재 주가는 2만4천원선이다.
2만원까지 떨어지고 4대 1 감자를 한후 재상장을 할 경우를 가정해 보자.
최초 재상장 가격은 8만원이다.
업계가 판단하는 적정가치인 3만원까지 떨어지더라도 액면가에 주식을 받아간 업체들은 6배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
다른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현재 새로 발행될 쌍방울 주식 일부를 G사가 중간에서 전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는 소문이 나 있다.
G사가 '분양'하는 주식을 1만∼1만5천원선에 잡는 투자자도 간단히 두 배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 인기를 모으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점도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 누가 나서나 =인수합병의 주체는 대부분 표면상 기업구조조정회사(CRC)나 투자자문사로 돼있다.
개인 및 기관투자가들을 모아 투자조합을 만들거나 컨소시엄을 이뤄 인수전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쌍방울의 경우도 애드에셋투자자문이라는 소형 투자회사가 주체가 되고 금호종금 세종증권 네티션닷컴 등이 합세하는 방식으로 매각입찰에 참여했다.
그러나 회사를 경영할 전략적 투자자가 없으면 수백억∼수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자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이때 주식전매가 동원된다.
신주를 배정하기로 하고 프리미엄을 얹어 제2,제3의 투자자들에게 매각을 하는 것이다.
중간에는 물론 '분양회사'가 이 주식을 매각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투자자들은 재상장되면 즉각 매각해 차익을 실현하고 시장에서 빠져 나가면 그만이다.
◆ 심상치 않은 주가 급등 =이들 매각대상 기업의 주가는 인수합병(M&A)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인다.
쌍방울은 지난 3월38일 1만5천원이던 것이 두 달사이에 1만원 가량 올랐고 미도파도 3월7일 1천4백10원이던 것이 인수자가 확정된 즈음인 지난 23일에는 7천8백원까지 치솟았다.
극동건설과 삼익악기도 두 배 가량 올랐다.
◆ 문제점 =높은 가격으로 회사를 매각하는 것은 해당 기업은 물론 채권단과 법원 모두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높은 가격에 팔리는데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
이런 식으로 새 주인을 찾은 회사들 가운데 일부는 컨소시엄 주체들이 차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대량 매각함으로써 주가가 떨어지고 경영이 악화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회사를 장기적으로 경영할 전략적 투자자를 찾지 못할 경우 향후 또다시 경영위기를 맞아 서울지법 파산부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연한 주식전매가 성행함에 따라 인위적 주가조작이나 탈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실기업 매각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전략적 투자자를 원하면 매각가격이 낮아지고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해서는 캐피털 게인을 원하는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