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외통상 세계 16강 .. 趙煥益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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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월드컵 16강 진출을 바라는 염원 일색이다.
공 안차는 나라는 세계에 한 나라도 없으니 세계 16강 진출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역 안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국제무역에서 우리는 벌써 오래 전에 세계 16강에 들었고,현재 무역규모 13위를 자랑한다.
월드컵도 16강부터는 체력이나 기술로 보나 모두 우승을 노리는 상태에서 혈전을 치러야 한다.
우리의 대외통상여건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이제 우리의 상대는 그야말로 세계 최강들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무역 규모는 좀 되었지만,변변한 세계 최고상품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주로 싼 가격으로 그들과 경쟁했다.
그러니 선진국과 통상마찰이 발생하면 일방적으로 혼이 나는 경우가 많았고,그 통상교섭의 양상도 대개 불평등 교섭이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컬러TV 반덤핑 제소가 있어 온 나라가 들썩거릴 때 미국 상무부의 말단 조사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은 공을 다 들였고,우리 반도체가 미국에서 특허권 침해로 조사받을 때 미국업체와 서둘러서 로열티 협정을 맺는 타협을 하면서 위기를 넘긴 바 있다.
그 당시 통상정책의 목표는 선진국의 갖은 통상 압력과 으름장을 어떻게 하면 잘 교섭하여 피해 나가면서,우리 산업과 제품이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시간을 버느냐 하는데 있었다.
그러니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고,또 그런 식으로 그럭저럭 버텨 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다시 통상마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미국 부시 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예견됐지만 철강에서부터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우리의 주력상품으로 번져나갈 우려가 크다.
특히 철강은 세계대전 양상을 띠더니,중국까지 참전했다.
지금의 통상마찰 패턴은 우리에게 과거와 완전히 다른 의미가 있다.
이 품목들은 우리가 이미 세계 8강, 4강에 들어있고 우승을 향해 뛰는 종목들이다.
통상마찰이 생기면 세계 1등을 다투는 산업마찰이다.
우아한 수사학으로 무장된 정부간 교섭과 유려한 법률적 자문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규선이 미국의 철강수입규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은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우리의 세계 일류상품은 1백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상품들이 후진국형 통상마찰인 덤핑제소에 걸릴 가능성은 점차 없어질 것이다.
이제는 선진국형 통상마찰이다.
과거 미국과 EU간의 항공산업 정보통신산업 유전자식품산업 등의 통상마찰처럼 첨단기술산업 주도권 경쟁의 양상을 보일 것이다.
국가의 산업정책이나 기업간 M&A에서 발생하는 독과점 문제나,기술표준과 안정성 문제 등이 다툼의 대상이다.
EU가 우리나라 조선산업에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것도 우리가 고부가가치분야인 여객선 시장까지 침투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 반도체산업정책을 문제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기술력 우위 분야인 비메모리분야까지 한국이 석권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 속뜻이다.
이제는 통상분규가 터진 후에 소위 정부 교섭단이라고 해서 우르르 현지에 몰려가 봐야 만날 상대도 별로 없다.
통상 문제의 중심추가 정부에서 기업으로 이미 옮겨왔고,수세적 통상에서 공세적 통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 반도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반도체업체와 미국 컴퓨터업체간 손을 잡아야 하고,미국과 EU의 철강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중·일 3국 기업간 철강동맹 같은 것을 검토해 볼 만하다.
자동차도 외국과 끈끈한 기술제휴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기업간 전략적 제휴를 지원해 주고,우리의 원군이 될 외국기업을 유치하며,국제적 기술표준을 선점하는 일 등이 정부의 새로운 통상 영역이다.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은 불가분이고,이에 맞추어 정부의 통상체제도 변화해야 한다.
이제는 피해 나가는 기교보다 체력과 세를 키워 나가서 히딩크식 정공법으로 이겨나가자는 것이다.
아마 우리의 대외통상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어쩌면 히딩크의 마음속에는 단순한 16강 진출 이상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hecho@kote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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