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민영화 의미 살리려면 .. 裵洵勳 <KAIST 초빙교수>

한국의 축구팀은 누가 지배하는가? CEO가 거스 히딩크 감독이라면,그 감독을 선정해 고용하고 해고하는 결정권은 누가 행사하는가? 월드컵 축구대회 본선 진출 48년만의 첫 승리에 열광하는 우리 국민들은 고객인가 주인인가? 한국 축구의 지배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야 정부관계부처·대한축구협회 등 각자의 업적과 책임이 분명해진다. '공기업 개혁'이라는 큰 전제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민영화는 그 목적에서부터 접근 방법에 이르기까지 흔들리고 있다. KT(옛 한국통신)의 주식대금은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민영화의 목적이 △주식을 고가로 매각하는 데 있는 것인지 △공기업의 과거 운영이 방만하고 관리가 부실하니 민간에 맡겨 운영효율을 높이려는 것인지 △통신시장의 규제를 풀어 자율화하며,통신기초시설의 투자를 효율적으로 하려는 것인지,또는 세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여기에서 지적한 세가지 목표는 서로 경쟁적이다. 때문에 어느 한가지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희생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세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의도는,성과를 적절히 타협해 조정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개혁의 하나로 추진하는 공기업의 민영화는 모두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미 민간업체가 된 포항종합제철과,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들에도 같은 문제가 있다. 주식 가격은 단기적으로는 주식시장의 수급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지만,안정적인 주식시장에서는 기업의 수익성에 달려 있다. 주식을 고가로 매각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핵심역량을 활용해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유능한 경영진을 선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KT의 경영진 선임과 주식 매각을 담당하는 부처가 다르면 서로 협조해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인 주주총회와 이사회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주관적인 결정을 해야 하므로 기업의 경쟁력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공기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성과에 따른 보상을 할 수 없고,성격이 다른 여러 공기업에 일률적인 규정을 적용하기 때문에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쉽다'는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민영화한다. 민간기업도 사업이 번창해 회사 규모가 커지면 관료적이 되기 쉽다. 또 명예로 보상 받는 공공기관과 달리 금전적 보상만을 기대하는 전문경영진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기업 지배자가 경영진을 선임하면서 일정 범위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경영의 효율이 저하된다. 공기업은 정부가 투자해서 설립한 조직들로 시작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업이 시장독점적이다. 이제 시장의 규모가 커져 다수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민간기업의 신규 진입을 허용하고 기존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경우,일반적으로 기존 업체가 신규 진입자보다 경쟁우위를 갖는다. 또 시장의 성격상 성장하더라도 영구 독점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등 규제를 하면,'시장경쟁을 통한 민간의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고자 하는 민영화의 의미가 없어진다. 포항종합제철·KT의 주식이 매각된 데 이어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도 매각되려 하고 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의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세워야 한다. 민간기업의 지배구조는 '지배주주가 전문경영진을 선임해 합법적인 경영을 하는 한,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외이사를 통해 경영권을 제한하는 제도나,재벌기업이 지배주주가 되지 못하도록 주식을 분산한 뒤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경영진 선임에 영향을 미친다든가,시장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가격 규제는 민간기업의 장점인 창의성을 억제하는 행위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주식을 매각하는 정부의 의지와,주식을 구매하는 일반 주주간에 민영화 이후의 지배구조가 투명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미리 조치를 한 뒤 추진돼야 한다. soonhoonba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