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스피드경영"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은 '스피드경영의 전도사'로 불린다. 그의 집무실에는 그 흔한 소파가 하나도 없다. 지난 2000년 7월 스피드 경영을 천명한 후부터 대면(對面)보고를 없앴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해외 출장 중에도 사내 인트라넷 시스템에 수시로 접속, 전자결재를 통해 바로 바로 중요한 업무를 처리한다. 그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피드 경영'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이런 생각은 현대정공에서 지금의 현대모비스로 회사명을 바꾼 뒤부터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스피드 경영을 위한 첫 작업으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업무보고와 전자결재를 할 수 있는 첨단 인트라넷 시스템을 구축해 회사 내에서 서류더미를 몰아냈다. 서류결재가 없다보니 그만큼 시간이 절약되고 사내 효율성도 높아졌다. 내친김에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UMS(메시지 통합관리 서비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임직원들의 개인컴퓨터(PC)와 휴대폰을 연결, 회사 밖에서도 PC를 통해 그때그때 메일 및 팩스를 받아보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 회사 정보처리시스템에 수신된 메일 및 팩스와 부재 중 걸려온 전화도 외출 중인 직원의 휴대폰으로 알려준다. 수신된 문자정보의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팩스로 받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확인한 메일에 대해 음성으로 회신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박 회장은 "모든 임직원들이 이 시스템에 적응해 대부분의 업무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즉시 처리되고 있다"며 "빠른 결정으로 경쟁력이 높아지고 신속한 업무처리로 부품관리와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는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속한 정보처리가 요구되는 중역들과 영업부 직원들에게는 수신된 메일이나 팩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성능 전자수첩까지 지급했다. 나아가 그는 지난해 3월 원격화상회의를 전격 도입, 스피드 경영을 한층 강화했다.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각 사업장의 임원들을 인터넷 화상으로 불러놓고 회의를 갖는다. 그를 포함한 16명의 임원들은 카메라와 헤드셋이 부착된 개인용 모니터를 통해 그날그날의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 박 회장은 최근 화상회의를 1백40여명의 부서장급으로까지 확대해 업무 효율 극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회장의 스피드 경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협력업체와 자재발주 납품 대금지불 등 실제 구매업무를 인터넷 상에서 실시하는 전자조달 정보시스템(MIPS)을 구축해 실시간으로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또 협력사의 유동적인 자금운용을 위해 전자방식의 대금지불 시스템도 도입했다. 덕분에 어음발행 등 구매업무에 들어가는 시간과 관리 인원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신바람 나는 직장 분위기 속에서 우수한 인재를 키워 내는 것"이다. 그는 임원들에게 항상 "조직의 기본은 사람이고 사람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관심과 정성"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유지하는 일에 힘써 줄 것을 주문한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배낭여행 등 다양한 사원복지제도를 마련한 것도 이런 그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현대모비스는 직원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을 키우기 위해 국내 기업 처음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배낭여행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매달 3명의 직원이 한 팀을 이뤄 15일 동안 자신들이 직접 계획한 일정에 따라 해외를 여행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50여명의 임직원들이 참여했다. 또 국제감각을 지닌 인재 배출을 위해 연간 24억원을 투입, 각종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어학(영어 일어) 교육과 일 대 일 회화 중심의 중국어 교육 △정보검색 전자상거래 등의 e비즈니스 교육 △사원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산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전 임직원들을 품질관리 전문인력으로 양성키 위해 품질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직원 및 가족들을 위한 커뮤니티 포털사이트인 '모비스월드'(www.mobisworld.com)를 개설했다. 이같은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박 회장의 적극적인 의지에서 시작됐다는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기업은 최고경영자(CEO)의 의지와 의사결정도 중요하지만 조직과 시스템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회사는 조직 내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해요. 중역과 부서장들은 업무의 3분의 1은 부하직원을 육성하는 일에 쏟아야 합니다." 경영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중심의 경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 직원들의 이름과 성향을 알고 있다. 직원들과 허물없이 영화구경도 종종 간다. 퇴근시간이 지나 늦게까지 근무하는 사원이 눈에 띄면 직급에 상관없이 데리고 나가 저녁을 사주기도 한다. 해외출장 때는 종이팩 소주를 한아름 싸들고 가 현장직원들과 어울린다. 사내 전산망을 통해 직원들의 경조사나 근황을 늘 챙겨보고 자신에게 오는 이메일에는 반드시 답장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에게는 분신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최근 일어난 그룹 내의 경영진 교체 과정에서도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직을 굳건히 지켰다. 6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그는 77년 정몽구 회장과 함께 현대정공 설립의 산파역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회사 창립 초기 울산에서 흙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정몽구 회장과 함께 공장을 일구던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며 "정몽구 회장을 측근에서 보좌하면서 경영인으로서 필요한 안목과 사업역량, 결단력과 추진력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룹 일각에서는 옛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써비스 멤버로 재구성된 'MK 사단' 내에서 박 회장을 최고의 실세로 꼽기도 한다. 박 회장은 요즘 2010년 세계 자동차업계의 '빅5' 진입이라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협력업체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매년 두 차례씩 정책세미나를 열어 회사의 사업계획과 정책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또 자신이 직접 1년에 4차례씩 협력사 간담회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가 '글로벌 톱 5'로 도약하기 위해선 협력 부품업체의 경쟁력 향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 [ 약력 ] 1943년 12월9일 충북 영동 출생 영락상고, 중앙대 경영학과, 경희대 경영대학원, 고려대 노동대학원 졸업 69년 현대그룹 입사 78년 현대정공 입사 83년 현대정공 상무 92년 현대정공 부사장 97년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 한국NC연구조합 이사장 99년 한국철도차량공업협회 회장 2002년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회장, 현대자동차 등기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