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이들 세상 .. 김범수 < NHN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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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일과를 살펴보면 정말로 안쓰러운 상황이다.
학원을 2~3개씩 다니는 것은 보통이고 한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와도 숙제가 한아름이다.
아파트 놀이터엔 더 이상 아이들이 없고 학원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친구와도 만날 시간이 없다.
유일한 휴식은 아주 약간의 시간동안만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1학년 딸아이가 있다.
불행히도 우리 아이들의 일과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처음엔 학교로 시작된 일과에 하나씩 과정들이 추가되면서 아이들의 바쁜 일과는 강도가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점점 강압적으로 아이들을 대하게 됐고 아이들과 엄마 사이에서는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결국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세가지 합의를 이뤄냈다.
첫번째는 신뢰.
아이들을 조건 없이 신뢰하고 야단치기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자.
두번째는 공감.
아이들의 생각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의 세상 속에 같이 있도록 노력하자.
세번째는 자율.
우리는 아이들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원자다.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들이 스스로 공감하지 못하는 일은 강제로 시키지 말자.
말 잘 듣는 아이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가 되도록 도와주자.
그리고 그 세가지 원칙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아이들을 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후 거짓말처럼 우리집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엄마가 딸과, 필자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가장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의 쉬운 대화부터 가족에 대한 생각, 최근의 관심사 등 장시간의 대화까지도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화 끝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이 나오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
다니기 싫어하는 학원은 그만두게 했다.
그 아이들만의 세상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들하고 멀어지게 될 뿐이다.
부모라면 내 세상에 아이들을 넣기보다는 그 아이들의 세상으로 한걸음 먼저 들어가는 것이 참된 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줄넘기를 못해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는 생각지 못한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곧바로 아이와 함께 줄넘기를 시작했다.
또한 아이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을 무작정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 같은 편이 돼 함께 하고 스스로도 즐겼다.
정말로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한번 마음을 연 아이들과의 대화는 너무나 순조로웠다.
최근에 아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니?"라는 말을 했더니 아이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이제 겨우 10살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이미 10살로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