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축구와 시장경제는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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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축구는 자유시장 경제와 가장 닮은 스포츠다.
하지만 자유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미국에서 축구는 비인기 스포츠다.
미국팀이 이번 월드컵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3-2로 꺾은 것은 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중의 기적이다.
하지만 미국민들은 미국팀이 반세기만에 해외 월드컵에서 승리를 한 것보다 농구 스타 섀킬 오닐이 몇 골을 넣었는지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의 잘못이 크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행사 위상을 앞다퉈 깎아내리려고 노력해왔다.
보수주의자들은 특히 축구를 싫어한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극성스런 엄마로 통하는 사커맘(Soccer moms)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축구를 비인기 스포츠로 만들고 있다.
축구가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지난 프랑스 월드컵때 보수적인 경제학자 스티븐 무어는 "축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노동가치 이론이 적용된 스포츠"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 국가중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국가가 없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이같은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축구가 자유시장 경제의 원칙을 훼손하기는커녕 찬양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축구와 미국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미식축구를 비교해보자.어느 스포츠가 더 개인(선수)의 혁신과 창조성을 중시할까.
미식축구에서는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에 일일이 따르면서 경기를 진행한다.
중앙집중형인 셈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감독의 영향이 제한적이고 게임은 예측불허다.
타임아웃(time-out)이 없기 때문에 경기중 작전회의를 가질 수도 없다.
자유시장 경제처럼 축구 경기는 자체논리대로 진행된다.
90분간 뛰고 있는 선수(시장참여자)들이 내린 수백건의 의사결정에 의해 정해진 논리가 경기를 지배한다.
축구감독들은 전술과 사전준비는 경기의 일부를 차지할 뿐이라고 말한다.
선수들은 처음 몇분간 짜여진 각본에 의해 공을 찬다.
하지만 이도 잠시 뿐이다.
결국 축구는 '선수 개개인'이 한다.
축구의 자유방임적 특성은 미식축구와 농구에 비해 규칙이 적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축구에는 문화적인 규범도 작용한다.
한국팀을 이끄는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연공서열을 깨는데 노력했다.
젊은 선수들이 훈련중에 선배들의 통제를 받지 않도록 해 개성과 리더십을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공서열이 아니라 능력이 팀내 위치를 결정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한국팀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이번 월드컵 지역 예선 때 지나치게 수비에 의존하는 전술을 고집해 비난을 샀다.
브라질답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브라질은 터키 및 중국과의 경기에서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보여줬다.
경기가 높은 수준으로 펼쳐질 때 축구만큼 아름답고 흥분케 하고 열정적인 스포츠는 없다.
최고의 축구선수는 절제된 공격력 지능 시야는 물론 체격 기술 균형 힘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맨인 것이다.
축구에 비미국적인 요소는 없다.
정리=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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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최근 실린 'The Right Football'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