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순원의 '붉은 악마와 함께...'] 들었는가! 보았는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앞이다. 경기시작 1시간30분 전인 오후 2시,그 때 이미 이 거리는 서울 곳곳에서 몰려 나온 인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아니,거대한 붉은 물결의 강이다. 그 강이 흐르며 함성 지르고,응원의 북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은 경기장에서 뿐만 아니라 또 하나 '거리의 월드컵'으로 오래도록 우리에게 기억남을 것이다. 오늘 미국과의 경기가 열리는 대구 월드컵경기장뿐 아니라 온 나라가 거대한 응원장이며 전국적으로는 80여곳에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거리의 응원인파만도 전국에서 70여만명.지금 내가 나와 있는 광화문 일대에도 일곱 개의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광화문 거리에 운집해 있는 수많은 인파가 뿜어내는 저 뜨거운 응원의 열기는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응원 열기에 못지 않을 것 같다. 대체 이곳에 모인 인파가 얼마나 될까. 문득 그 수가 궁금해진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던 것은 내 기억에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부터 꼭 15년 전인 1987년 6월,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응원처럼 민주화를 외쳤다. 연일 사람들이 터져 나오고,곳곳에 최루탄이 난무하던 그 거리에서 세계인의 축구 축제를,그것도 바로 우리 한국과 미국전을 바라보는 감회 어찌 새롭지 않으랴.오늘이 바로 그날,6월10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열기가 많은 언론에서 걱정하는 대로 꼭 미국과의 경기이기 때문에 과열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치르는 두 번째 경기가 폴란드전이었다 해도,또 포르투갈전이었다 해도 이 열기 그대로일 것이다. 3시30분.드디어 경기 시간이 다가왔다. FIFA(국제축구연맹) 페어플레이기와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가 입장하고,이어 양국의 국가가 울려퍼졌다. 보라! 이 거리의 저 숙연함을.이것은 경기장에서 느끼는 숙연함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이 뜨거운 한낮,그 순간 세상은 오히려 고요하기까지 하다. 달구벌의 함성과 환호가 대형 화면을 통해 바로 이곳 광화문에 전해지고,그것은 이내 또다른 함성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공은 둥글다. 모든 경기는 공이 멈추어야만 그 승부를 알 수 있는 것처럼.우리는 다만 이 열기 그대로 우리 대표팀을 성원할 뿐이다. 한국의 태극전사 파이팅! 한국의 붉은 악마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