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남북 한마음된 'AGAIN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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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한국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대전 경기장에는 아주 독특한 광경이 펼쳐졌다.
1만여명에 이르는 붉은 악마들이 빨간 도화지와 하얀색 도화지를 이용해 'AGAIN 1966'이라는 카드 섹션을 펼쳐보인 것.
외국 기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라운드 한쪽에서 연출되는 장관을 놓칠세라 연신 셔터부터 터뜨리고 나서 한국 기자들에게 'AGAIN 1966'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왔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적이 있는데 그 영광을 오늘 재현하자는 의미죠"라고 설명 하자 그 외국 기자는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은 지금 대치하고 있지 않나요? 그 때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말은 이제 동반자가 됐다는 걸 의미하나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켰을 때만 해도 북한은 말 그대로 우리의 '적(敵)'이었다.
각종 스포츠 대회에서 맞붙으면 그라운드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경기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그랬던 북한의 영광을 36년이 흐른 지금 재현하자니.세상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요즘 북한 방송에선 월드컵 경기를 내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한·미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펼쳐보인 '할리우드 액션' 세리머니도 북한 주민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어쩌면 'AGAIN 1966'이라는 카드섹션도 봤을지 모르겠다.
북한 주민들이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뜨거운 동포애를 느끼며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남북의 이같은 마음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일까.
어제 우리 태극전사들은 결국 1966년 북한의 영광을 재현하고야 말았다.
월드컵을 통한 하나됨이 통일로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외쳐본다.
'코리아 파이팅!'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