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易地思之의 행정 .. 박인구 <동원F&B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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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집 골목에 은빛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울 강남구에서 시작된 골목길에 이름 붙여주기 사업은 이제 여러 지역으로 확대돼 새로운 길이름과 좌우 홀·짝수 번지가 부여된 서양식의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한글길이름 밑에 영어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테헤란로의 경우 Teheranno,은빛길을 'Unpit-gil'이라고 하는 식이다.
나는 그 영어이름을 붙여놓은 이유가 외국인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로(路)나 길(道)을 굳이 no 또는 gil로 표기하기보다 길의 사이즈에 따라 St.(Street),Rd(Road),Blvd(Boulevard),Ave(Avenue)로 붙인다면 어떨까 하고 당국에 질의한 바 있다.
하지만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한글의 영어표기법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전 수원시에 가 봤더니 남수문길을 Namsumun-Road로,팔달로를 Paldal-Street로 표기하고 있었다.
역시 유네스코문화유산을 가진 도시답게 규정만을 앞세워 수요자를 불편하게 하기보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표기방법을 영어식으로 바꾼 용기있는 행정이 아닌가.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상하이시의 푸둥지구에는 세기대로(世紀大路)밑의 영어표기를 'Century Ave.',동방로(東方路)를 'Dongbang Rd.'로 표기하고 있다.
아울러 도로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표기 양끝에 S(South)와 N(North) 또는 E(East)와 W(West)까지 친절하게 표기해 놓을 정도다.
우리식으로 따라오라는 문화적 국수주의보다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을 배려하는 그들 나름의 실용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얼마전 도로공사에서는 전국의 고속도로번호를 도시와 도시 중심에서 남북은 홀수체계로,동서는 짝수체계로 바꿔나간다는 발표가 있었다.
참 다행스런 일이다.
하나 더 욕심을 부린다면 우리가 도로주행을 할 때 내가 지금 몇 번 도로를 가고 있는지,고속도로를 타려면 어느 도로를 따라가야 하는지 안내표시가 없어 간혹 멈추어 묻거나 안내판이 걸려 있는 사거리까지 가서야 알게 되는 불편을 없애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도로 곁에 있는 전신주를 활용한다면 국민들도 번호 위주로 길을 파악할 것이고 고속도로 진입도 쉬워져 그에 따른 시간과 기름도 절약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