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울어버린 '승부사 히딩크'..종료 휘슬 울리자 獨감독에 축하의 포옹

승부사 히딩크 감독이 끝내 눈물을 보였다. 히딩크 감독은 25일 독일과의 경기가 끝난 직후 태극전사들 뿐 아니라 독일선수들의 등도 두드려주며 웃는 모습으로 멋진 경기를 한데 대한 노고를 칭찬했다. 그러나 월드컵 주관 방송사인 HBS와의 인터뷰를 끝낸 뒤 솟구치는 감정을 삭일 수 없는 듯 끝내 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직 3·4위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결승 진출이 좌절된 뒤 히딩크 감독의 뇌리에는 길다면 길고,짧다면 짧은 18개월 동안의 한국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을 법하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 첫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느꼈던 이질감,곧바로 실시한 울산 전지훈련에서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월드컵 16강의 고지,그리고 프랑스와 체코에 잇따라 0-5로 패하면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아픔 등…. 강도 높은 훈련의 성과로 유럽의 강호들을 잇따라 제압하며 한국민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던 영광의 기억도 빠질 수는 없었을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히딩크 감독의 눈물을 자아낸 것은 혹독한 훈련을 묵묵히 인내해준 선수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때로는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곤 했지만 18개월 동안의 훈련은 가혹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 탈 없이 소화해낸 선수들의 성실함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눈물을 보인 뒤 다시 승부사로 돌아왔다. "최대한 체력을 회복해 3위를 달성하겠다"며 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뒤 다음 경기에 대한 구상에 돌입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8시께 독일과의 4강전을 앞두고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히딩크 감독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팔짱을 낀 채였고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다 가끔씩 붉은 악마들의 환호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오후 8시30분.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특유의 몸짓도 시작됐다. 팔짱을 끼고 묵묵히 지켜보는 감독은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미세히 반응했다. 이어지는 그의 몸짓은 혼(魂)을 불러내는 정열적 지휘자의 모습이었다. 감독은 긴박한 순간순간 선수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지시를 했다. 특히 우리가 수세에 몰릴 때 그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다. 전반 20분. 감독은 이영표가 상대의 교묘한 반칙으로 쓰러지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사이드라인으로 급히 다가갔다. 이윽고 이영표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을 때 안심한 듯 한숨을 쉬면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자리로 들어왔다. 전반 27분. 사이드라인으로 바짝 다가가서 진두 지휘하던 그는 심판이 지나친 행위라며 주의를 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은 탓일까. 그는 몇 마디 더 주심에게 던지고서야 자리로 돌아왔다. 독일이 공세를 취하면서 히딩크 감독은 바빠졌다. 선수들 하나하나에게 지시를 내리며 전체적인 포메이션을 바꿔 나갔다. 긴박한 위기의 순간을 넘기는 특유의 지도력이 발휘된 것이다. 그러나 후반 30분 독일의 발라크에게 너무도 쉽사리 골을 내주면서 히딩크 감독은 순간 철렁하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골을 내주자마자 히딩크 감독은 천천히 사이드라인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머리를 두번 쓰다듬었다. 다시 머리를 다시 한번 긁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말을 내뱉은 듯했다. 하지만 흥분을 자제한 것일까. 아니면 선수들을 끝까지 믿었던 것일까. 더이상의 동요는 없었다. 이윽고 후반 35분 수비수 홍명보 대신 설기현을 교체하면서 히딩크 감독은 승부사로 다시 한번 변신했다. 그러나 그의 승부수도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4강의 영광을 가슴 깊이 안고는 경기를 마무리해야했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