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건실한 성장만이 해결책 .. 李宗恩 <세종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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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의 성과와 상환대책에 관한 정부시안이 발표됐다.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정부안을 확정한 뒤 관련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요약하면,공적자금 1백56조원 중 42조원은 회수됐고,45조원은 회수가능하다고 예상하며,나머지 상환대책이 필요한 69조원 중 20조원은 금융권이 부담하고,49조원은 재정이 부담하기로 했다.
또 재정이 부담하기로 한 49조원의 절반인 24조5천억원은 조세감면 축소와 에너지세제 개편 등의 세수증대로,나머지 24조5천억원은 재정지출 감축으로 향후 25년 내에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발표문엔 지원된 공적자금 현황,성과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것은 동시에 여러 가정을 토대로 한 하나의 정성 들인 시나리오다.
경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외부충격을 받기 때문에 실제 경기 변동이나 경제성장에 따라 공적자금이 얼마나 상환될지,세수기반이 얼마나 확보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나름대로 세운 계획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럼에도 계획이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가시화시켜 추진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세감면 및 세원발굴,에너지세제 개편 등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발표한다고 했다.
정부는 공적자금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세워 일반국민에게 부담 지우는 것을 가급적 지양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궁극적으로 기업과 일반국민이 따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추후 발표되는 대책에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어떠한 조세부담을 안게 되는지 밝혀야 한다.
공적자금 상환문제는 단순한 조세부담의 문제만이 아니다.
민간부문의 설비투자나 연구개발투자를 구축해버리면서 경제의 장기성장을 총체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재정적자나 국채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이다.
조 단위의 액수인데도 문제의 심각성과 각자 부담해야 할 부분이 일반국민의 피부에 느껴지지 않는다면,공적자금 상환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문제도 아닌 것이 될 위험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역시 시나리오일 뿐이겠지만,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공적자금 상환 마스터플랜에 무리 없이 맞추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성장해야 되는지도 궁금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재정적자문제가 정치 쟁점화되면서 그램-러드만-홀링스법을 통해 강력한 적자 감축계획을 추진한 미국이 결국은 법보다도 지난 10년 간 장기호황으로 자연스럽게 재정흑자 기조로 반전된 사례가 보여주 듯 공적자금 상환문제는 경제성장으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본질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성장이 절실한 만큼 효율적이고 투명한 시스템과 이를 조성할 단호한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축구가 정치는 아니라며,애국심 운운하면서 외국인지도자 영입에 거부감을 표현하지만,내가 보기엔 리더십 경쟁에 자신이 없거나,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축구든 정치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리는 같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진 빚 때문에 전개되는 왜곡된 인적자원 배분 등 조폭집단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분위기로는 한국경제의 건강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정치시장 개방논의를 포함해서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역량은 뛰어나다.
어줍잖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로 대해도 되는 수준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이 뛰어난 역량을 담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냄비근성이 있다는 둥,모래알 같다는 둥,외국에서 볼 때만 잘한다는 둥,스스로를 폄하면서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시각이 있지만,그 동안 이렇게 보였던 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인센티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 한국 경제가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기회비용을 치르지 않고 건실한 성장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다면 공적자금 상환문제쯤은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본다.
대한민국은 지금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
ljongeun@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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