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회계부정' 월街 흔들 .. 기업 신뢰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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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장으로 평가받는 월가.
그래서 자본주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곳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증시 하락은 대부분 경기사이클에 영향을 받아 왔다.
지난 2년간의 하락도 10년 호황 뒤에 이어진 경기후퇴기의 어쩔수 없는 산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기사이클이 아니라 월가의 든든한 주춧돌들인 미국 기업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상실이 증시를 붕괴시키고 있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데도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신뢰상실의 출발점은 지난해말 미국 최대 에너지업체인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면서 부터였다.
당시만해도 엔론은 미국 기업 가운데 '예외'로 인식되었다.
다른 기업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했다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파장도 금세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엔론의 회계를 맡았던 아더앤더슨이 고의적인 서류파기 등으로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는 등 회계부정과 관련된 대형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면서 기업 재무제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미 문제가 드러난 타이코인터내셔널 아델피아 루슨트테크놀로지 등은 물론 GE나 IBM등 미국의 '대표기업'들도 회계부정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26일 발표된 미국 2위 장거리회사인 월드컴의 38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 이익부풀리기 사건은 최근들어 시리즈로 터지고 있는 스캔들의 대표격이다.
특히 미국 가정의 모범이라고 불리던 여성사업가 마샤 스튜어트가 생명공학회사인 임클론의 내부자거래에 관련된 사실이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와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통신장비업체 퀘스트커뮤니케이션도 이날 분식회계와 관련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주가가 하룻동안 57% 추락했다.
보다 큰 문제는 분식회계 기업의 주가만이 폭락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월드컴의 파산위기는 자금을 대출해준 금융기관에도 직격탄을 날려 씨티그룹,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의 3대 금융기관을 포함, 거의 대부분의 금융주들의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그 여파로 다우지수는 이날 장중 한때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9,000선이 무너졌고 나스닥도 98년 10월이후 거의 4년만의 최저치에 머물렀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살얼음판 같은 증시에서 돈을 빼고 싶은 마음뿐이다.
다우와 나스닥이 언제 또다시 폭삭 가라앉을지 모르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기본원칙을 지키지 못한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이 월가는 물론 전세계 금융시장을 붕괴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