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No' 말할 수 있는 C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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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예스라고 답하지 않고 진실을 말했다면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스캔들로 번지고 있는 통신사 월드컴의 회계장부 조작사건이 터지자 CFO(기업재무 최고책임자)였던 스콧 설리번(40)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악화된 재무상태를 장부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최고경영자의 요구에 '예스'로 대답함으로써 회계 조작사건이 터진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설리번은 월드컴을 세운 버나드 에버스 전 회장의 최측근이었다.회계문제로 몇개월 전 퇴임한 에버스 전 회장이 이사회에 참석하거나 기업투자설명회를 할 때면 설리번은 으레 바로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설리번은 에버스 전 회장에게 질문이 쏟아지면 예리한 숫자감각을 활용해 명쾌하게 답변했다.
에버스 전 회장은 늘 "그 문제는 설리번에게 물어보시죠"라며 설리번을 쳐다봤다.
기업의 CFO가 재무 회계를 총괄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CEO)의 신임을 받게 마련이지만,설리번의 역할은 이를 훨씬 넘어섰다.
월드컴이 미국서 두번째로 큰 장거리통신사와 인터넷회사로 우뚝 선 것은 무려 75차례나 성사시킨 기업인수 및 합병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지난 97년 브리티시 텔레콤으로 거의 넘어갔던 MCI를 인수한 것도 월드컴이었다.
그때도 중요한 일은 설리번이 다 했다.
설리번이 월드컴의 CFO가 된 것은 불과 32세 때.뉴욕에 있는 오스웨고 대학을 졸업한 후 세계적 회계법인인 KPMG에 들어가 불과 4년만에 매니저가 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에버스 전 회장이 높이 사 일찌감치 CFO로 기용한 것이다.
에버스 전 회장에 대한 설리번의 충성과 신의는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충성심이 38억달러의 비용을 자본투자로 둔갑시키는 대담한 사기를 가능케 했을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설리번은 회계 조작사건이 터진 지난 25일 월드컴에서 쫓겨났다.
수사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수갑을 찰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투명성과 재무건전성이 중시되면서 CFO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월드컴 사건은 CFO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