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銀 창립 20돌] 라응찬.이희건씨 '고속성장' 큰 역할

신한은행은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총자산 66조7천억원 규모의 국내 3위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창립 당시 3개이던 점포는 3백41개로,2백79명이던 직원수는 4천3백여명으로 늘었다. 또 올해에만 6천3백억원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우량은행으로 성장했다. 신한은행이 이처럼 고속성장하기까지에는 라응찬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과 이희건 전 신한은행 회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라 회장과 이 회장의 인연은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은행 비서실장이던 라 회장은 김준성 행장(이후 부총리 역임)을 수행해 일본 출장을 갔다가 이 회장과 처음 만났다. 이 회장은 1977년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할 때 김 전 부총리의 천거를 받아 라 회장을 이사로 영입했고 79년엔 상무로 승진시켰다. 이후 라 회장은 신한은행 창립멤버가 됐다. 고졸(선린상고)출신으로 은행장까지 오른 라 회장은 철저한 소신 경영으로 신한은행을 일궜다. 정치권이나 정부관료들로부터의 대출청탁을 거절,한보 부실채권을 최소화한 것이나 자신을 키워준 금융계 사부 김준성 전 부총리의 인사청탁을 거절한 것 등은 금융계의 유명한 일화중 하나다. 덕분에 그는 은행장으로선 처음 3연임하는 복도 누렸다. 82년 당시 일본 오사카신용조합회장이던 이 회장은 한국의 외환사정이 어려울 때 일본에서 교포자금을 끌어와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일본이 엔화 반출을 규제하고 있던때라 교포들이 신한은행 설립자금을 여행용 가방에 숨겨 국내로 수송했던 일명 '007작전'은 아직도 감동적인 얘기로 전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신한은행 출범이후 은행을 키우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재일교포 주주들을 설득,20년 간에 걸쳐 진행된 10번의 증자에 모두 참여토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또 작년 2월까지 18년여 동안 신한은행 회장직을 맡으며 은행이 외풍(外風)을 타지 않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