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홍콩 어떻게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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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홍콩은 5년 전 어둠속으로 뛰어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활기찼던 자본주의 사회중 하나가 세계 최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이다.
시장경제 실험을 시작한 지 20년 밖에 안된 중국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수백명의 시민을 총칼로 쓰러뜨린 전력을 갖고있다.
홍콩 주민들이 결정권이 있었다면 그들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통치권이 넘어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콩 주민들의 대다수는 중국 대륙에서 온 난민이거나 난민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영국과 중국은 그들에게 아무런 선택의 권한도 주지 않았다.
중국 반환이 낳은 결과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많이 사람들이 당초 예상한 것보다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정치적으로 중국 정부는 홍콩에 공산주의 체제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덩샤오핑이 제안한 1국 2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간섭을 받지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의 외환보유고도 건드리지 않았다.
언론도 여전히 자유를 누리고 있고 톈안먼 사태를 추모하는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홍콩의 공무원들도 중국 중앙정부의 간섭을 별로 받지 않았다.
하지만 상반되는 결과도 있다.
중국 정부는 한차례이긴 하지만 홍콩 종심법원의 판결을 무효화시켰다.
홍콩 종심법원은 지난 99년 "본토에서 태어난 홍콩 주민의 자녀들은 홍콩 거주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으나 중국 정부는 1백60만명으로 예상되는 대륙 인구의 급속한 유입을 막기위해 법원의 판결을 파기,최고법원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홍콩 정부 스스로도 베이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의 요주의 인물로 찍힌 재미 인권운동가 해리 우의 입국을 거부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언론은 갈수록 길들여지고 있다.
홍콩 주재 당중앙 연락 판공실은 언론사에 대만문제를 일반 뉴스로 다루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홍콩 특별행정구 초대 행정장관 둥젠화가 중국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재출마했을때 아무도 그와 경합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영국 통치의 종식으로 홍콩에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중국 관료들의 주장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새로운 국가보안법의 추진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법안이 파룬궁이나 민주운동가들을 탄압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있다.
중국 관료들은 특히 파룬궁 추종자들이 해외의 세력과 계속해서 결탁하게되면 국가전복 금지 법안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저런식으로 해서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 이전에 누렸던 자유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게 홍콩은 1949년 이후 분리해온 대만과의 통일을 위한 예행연습의 무대로 비쳐져왔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홍콩의 1국2체제는 대만을 통일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대다수 대만인들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민주주의를 끌어 안을 때까지 대만인들의 독립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정리=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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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영국 주간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6월27일자)에 실린 "Could be worse,Was better"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