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앞선 수요여건과 경쟁력..裵洵勳 <KAIST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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裵洵勳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시장경제'라는 말이 유행처럼 많이 쓰였지만 아직도 시장원리는 기존 경제질서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IT(정보기술) 혁명'이라던 닷컴기업의 붐은 작년부터 미국에서 불어온 IT산업의 불황과 더불어 사그라져 버렸다.
한마음으로 응원하던 우리 국민의 열정은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폐막 이후 어디로 가는가? 진정한 붉은 악마(한국적 수요 여건)는 누구인가? 우리 경제가 수출 주도로 성장하다가 이제 내수 증가가 성장의 주요 요인이 되면서,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내수 증가가 생산성 향상과 조화를 이뤄야 하게 됐다.
미국은 IT 거품으로 장기 불황을 예고하고 있고,일본은 개혁의 부진으로 성장을 포기한 나라가 됐다.
월드컵의 실수요자인 우리 관중은 잉글랜드의 폭력적인 훌리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럽이 열광하는 축구를 의아한 눈으로 보는 무심한 미국인들도 아니었으며,예술의 축구라며 자기네들만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오만한 프랑스 관중도 아니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후발국의 겸손 안에서도 우리 고유의 문화를 세계질서 속에서 자신있게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반일,반공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던 기성세대에게는 '붉은 색 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의 승리가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 행사에서 아시아의 긍지'라고 주장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자신감을 그냥 '개혁이려니'하고 수긍하기에는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간혹 실수하는 젊은이들에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면서도,속으로 안타까워하는 기성세대들도 세계 속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새로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젊은 세대이고,이 젊은이들의 문화가 독특한 우리의 수요 여건이다.
유럽 GSM방식의 이동전화가 세계를 제패할 때 우리는 CDMA 방식에 묶여 있다고 얼마나 걱정들을 했던가? 내수 확산은 결국 미국과 중국이 우리 방식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국가 정보고속도로를 주창해 세계가 초고속정보망 구축 경쟁에 돌입하게 만든 미국은 정작 가입자망에서는 광대역망이 채산성 없다는 이유로 적극적이 아니었다.
PC방에서 스타크라프트 게임(놀이)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걱정하는 한편 '그러나 이것이 선진국 되는 길이겠거니'하고 체념하면서 전자게임의 세계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가정까지 광대역망을 확산하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우리 기성세대가 결국 세계에서 제일가는 IT선진국을 만들었다.
광대역통신 벤처기업들은 내수시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우리를 따라오는 일본에 초고속통신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시간 차이는 있더라도 결국 미국과 유럽도 우리를 좇아올 것이다.
우리는 중국에 미국과 일본의 기술이 아니라 앞서가는 대∼한민국의 기술을 채택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현명하게 선택할 줄 아는 우리 소비자(수요 여건)가 세계 속에 정보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국내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이라야 세계시장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내수시장이 미흡했던 시대에는 일본상품을 배워서 수출하자니 무조건 값이 싸야 했다. 이제 우리 젊은 소비자는 선진국 소비자들도 익숙하지 않은 첨단상품을 예리하게 '평가'해 주고 '소비'해 주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초고속인터넷을 일본 소비자들은 비싸다고 생각했고,미국 소비자들은 새롭고 편리한 것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여러모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었던 '붉은 악마들'의 거리 응원은 축구 원조인 유럽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다.
2006년 독일서 열리는 월드컵에서는 '초고속망을 통한 중계'도,'붉은 악마들의 거리 응원'도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우리의 국내 소비여건이,우리나라에서 운영하는 모든 기업들의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 소비자들만이 어느 정도의 기술수준을 터득해야 세계 4강이 될 수 있는 지를 안다.
soonhoonba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