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동 전문기자의 '유통 나들목'] 우리 동네 야채가게 총각들

사교육 열풍이 그 어느 곳보다 거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집값이 워낙 비싼 탓에 거주자 중 세입자 비중이 꽤 높다.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로 이 동네에서는 비싼 음식점,화려한 옷집은 금방 망한다. 철저히 가격과 품질로 승부해야만 살아남는다. 은마아파트 후문에 자리잡은 농수산물 소매점 '자연의 모든 것'. 10평 남짓한 가게는 아침 저녁 싱싱한 과일과 야채,생선을 사려는 주부들로 북적댄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고 그런 이 가게가 인근 1차식품 소매상권을 석권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다. 우선 품질과 가격에서 다른 점포들을 압도한다. 당일 판매가 원칙이어서 상품이 월등히 신선하다. 마케팅력도 갖췄다. 아침에 팔고 남은 것들은 저녁무렵 떨이로 팔아버린다. 자연 값이 쌀 수밖에 없다. 물건이 싱싱하고 싸다는 소문은 좁은 동네에 쫙 퍼졌다. 이에 따라 손님이 더욱 몰려드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이 점포의 별칭은 '총각네 가게'. 대학 나온 미남 청년 5명이 의기투합,트럭 야채장사로 돈을 모아 창업했다. '총각네 가게'는 장사가 잘돼 최근 인근 상가에 점포를 또 냈다. 총각들은 이른 새벽 도매시장에서 떼온 물건을 가게에 부리느라 구슬땀을 흘리지만 한결같이 행복한 모습이다. 이들은 사교육 열풍이 거센 이 동네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유교문화의 낡은 유산과 천민자본주의의 해악이 뒤섞인 학벌과 기득권의 틀을 깨뜨렸다는 점에서다. 심약한 듯한 중년의 샐러리맨 중에도 창업에 성공한 사람이 꽤 많다. 출산용품과 유아복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프랜드리 베이비'의 황인규 사장(45). 황 사장은 불과 2년 전까지 모 보험사의 영업간부로 연봉이 1억원에 가까운 샐러리맨이었다. 자칫 고액 봉급에 안주할 수도 있는 그에게 자극제가 된 것은 IMF사태 이후 구조조정 회오리에 휩싸여 직장을 떠나는 선배들의 절망한 얼굴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2년간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아기용품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현재 직영점과 가맹점이 40여개,연간 매출이 1백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황 사장의 발길은 요즘 들어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우수한 가맹점들의 입소문을 통해 이 사업을 해보겠다는 창업 희망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총각 야채 장수나 황 사장과 같은 용기있고 올곧은 창업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