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 강국의 길 '신뢰성에 달렸다'] (1) '패러다임이 바뀐다'

한국 경제가 미국의 증시 침체와 회계 부정 등 해외 경제의 동요로 인해 불안한 상황에 빠져 있다. 외부 경제여건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자생적인 생존 능력을 키우는게 필수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산업의 중추 기반인 부품.소재의 경쟁력이다. 특히 제품 수명과 고장률 등 미래 품질을 결정하는 부품.소재의 신뢰성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까다로운 선진국 시장을 뚫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은 산업자원부 부품소재통합연구단 한국산업기술재단 등과 공동으로 신뢰성 향상을 통해 '부품.소재 강국'을 실현하는 방안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 지난 2000년 여름 미국 2위의 자동차회사인 포드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파이어스톤사에서 만든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돼 미국내에서 판매된 6백50만대의 자동차를 리콜(무상 교환.수리)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지난해엔 미국 교통안전국의 타이어 결함 지적에 따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추가 리콜을 실시했다. '재앙'으로 표현된 이 사건의 여파로 포드 제국의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금이 갔다. 특히 타이어 결함을 숨겨왔다는 의혹이 일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지난 99년 초 1백40억달러에 달했던 현금 보유액은 사실상 바닥이 났다. 그러나 이는 눈에 보이는 수치일 뿐 추락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선 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드의 뼈저린 경험은 제품 생산과정의 품질관리보다 부품.소재의 핵심 경쟁력인 신뢰성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특히 원천 기술이 취약하고 기업 규모가 작은 한국 기업들로선 신뢰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곧바로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국내 부품.소재 산업의 외형은 급성장했지만 신뢰성 기술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부품.소재 산업은 2000년 전체 제조업 생산액의 48.2%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총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연평균 40%선에 달하는 등 경제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등 몇몇 품목을 제외하곤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제품이 없다. 한국 제품을 처음 구입한 소비자들은 선진국과 어깨를 견주는 품질 수준에 놀란다. 그러나 사용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감은 급격히 떨어진다. 선진국 제품보다 수명이 짧고 고장도 훨씬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과 한국의 가전제품을 5년간 사용할 경우 국산품의 누적 고장률(25%)이 일본(8%)보다 3배 가량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처럼 국산 제품의 신뢰성이 뒤처지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 부품.소재 기업의 국산화 전략이 선진 기술도입에 집중되고 있는 탓이다. 외국 기술을 단순히 베껴와 조립생산을 하다보니 독자기술 개발은 뒷전이다. 전문인력과 연구자료도 선진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취약하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지난 60∼70년대 신뢰성 학회를 구성,본격적인 산.학.연 공동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선진국보다 30년 가량 늦은 지난 99년에야 신뢰성 학회를 출범시켰다. 연구활동도 기초적인 사례 수집에 그치고 있다. 연구설비와 전문 연구인력을 갖춘 곳은 극소수 대기업 정도에 불과하다. 유동수 한국신뢰성학회 부회장은 "보잉 GE 마쓰시타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의 신뢰성 기술에서 나온다"며 "단순한 생산품질 관리에 매달리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선진 기업과 같은 신뢰성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 -------------------------------------------------------------- [ 협찬:한국산업기술재단 ] 이 시리즈는 매주 화.금요일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