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주진 <앰코테크놀로지 회장>.."아남반도체 매각은 윈-윈"

"동부전자의 아남반도체 인수는 두 회사 모두에 좋고 한국의 반도체산업에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앰코테크놀로지(아남반도체 대주주) 본사에서 16일 만난 김주진 회장(66)은 동부의 아남반도체 인수를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 "이번 매각에 대해 국내에서 오해가 많은 것 같다"며 서류를 일일이 뒤져가며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남반도체를 왜 팔려고 했습니까. "몇가지 이유가 있지요. 핵심 거래선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0.13㎛ 웨이퍼를 제조해 내년 하반기부터 납품해 달라고 제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남반도체의 입장에선 여기에 들어갈 6억∼7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42%의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인 앰코테크놀로지도 아남 때문에 손실을 보고 있어 해외에서 자금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와의 합병을 추진했습니다." -왜 동부전자였습니까. "동부와는 1998년에 처음 얘기가 있었다가 쑥 들어갔어요. 아남반도체의 구조조정이 오래 걸리는 등 상황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동부도 처음엔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나가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해외 쪽으로 알아봤습니다. 여러 회사가 매수의사를 밝혔으며 그중 말레이시아 실테라와는 계약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9·11테러의 영향으로 무산됐습니다. 당시 미국기업들은 아시아 회교권지역에 대한 투자를 재검토했고 주문을 주는 입장인 TI도 이를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11월께 동부와 다시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공장을 가지고 있지만 기술과 고객이 필요한 동부와 생산시설이 부족한 아남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매각대금(2천만주 1천1백40억원)이 싸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처음엔 주당 7천원 밑으로는 팔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앰코 장부에 있는 가치가 주당 7천원선이지요. 그런데 동부가 그만한 자금을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동부의 자금능력을 감안해야 했죠. 다행히도 협상 기간중 원화 가치가 급격히 절상되어 값을 조금 내릴 수 있었습니다." -TI의 주문에 응하려면 동부전자도 새로운 설비투자를 해야할텐데요. "TI가 요구하는 것은 내년 하반기부터 0.13㎛ 웨이퍼 월 1만장을 생산해 달라는 것입니다. 동부는 공장이 있기 때문에 3억2천만달러 정도만 더 투자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미 2억5천만달러 정도를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2대주주로 남는 앰코테크놀로지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아남쪽 최고경영자들은 물러나고 동부측에서 경영을 맡겠지만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을 방침입니다. 새회사 역시 TI와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앰코테크놀로지가 갖고 있는 아남반도체 영업권은 어떻게 됩니까. "영업조직을 포함한 영업권도 모두 넘기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 가격은 아직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협조정신에서 풀어나간다는 입장이니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남반도체가 매각되면 아남전자 아남건설 등 계열사들은 어떻게 되는지요. "지분정리 등을 거의 다 마친 상태입니다. 앞으로 서로 관계가 없는 회사들이 되는 셈이지요." -이제 아남그룹이란 이름은 사라지게 되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요. 하지만 주인은 바뀌어도 공장과 종업원은 한국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주인이 남아있는 것보다 사업이 지속되는 것이 휠씬 중요하지요. 동부와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면 TI의 기술과 물량이 대만으로 넘어갔을테니 국가적으로도 잘된 일입니다." -아남반도체를 떼어내면 반도체 조립(패키징) 전문업체인 앰코테크놀로지의 사업은 어떤 쪽으로 나가게 됩니까. "미국 기업들은 회사에 대한 얘기를 기자들이나 애널리스트들에게 별도로 못하게 돼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앞으로 앰코의 부채 17억달러를 갚는데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아남반도체 매각대금도 이 부채를 상환하는데 쓸 것이고요. 3년 안에 부채를 5억달러 수준으로 낮추면 앰코도 건실한 회사가 될 것입니다." -앰코의 부채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아남이 지난 96년 비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국내 은행들로부터 1조원의 자금을 대출받았습니다. 공장 1기를 완공했을 때 IMF사태가 터졌지요. 자금이 달리는 은행들이 대출회수에 나섰고 사업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던 아남은 높은 부채비율 때문에 퇴출 1순위였습니다. 구조조정작업에 들어갔지요. 98년 5월 월가에서 '아남'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앰코 증자를 통해 6억달러를 마련하고 20억달러를 차입하는 등 모두 26억달러를 만들었습니다. 이 자금의 일부로 아남을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창업주인 김향수 명예회장(90)과도 상의했는지요. "말씀은 드렸습니다. 가슴 아프시겠지만 지금 아버님은 일보다 건강을 생각해야 할때지요. 아버님이 창업한 회사의 문을 내린 것은 안타깝지만 그나마 아남이 빚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어지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