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악몽과 싸운 화가들 .. '청춘의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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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예술가의 삶에 투영되고 예술작품은 시대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때문에 훌륭한 예술작품에는 시대와 인생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찬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 도쿄 게이자이(東京經濟)대학의 서경식 교수(51)에게 렘브란트,고흐,고야,피카소 등 거장들의 예술은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두 형(서승,서준식)이 박정희정권 때인 1971년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고,이들을 살리려 애쓰던 부모님마저 세상을 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그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창문이었다.
'청춘의 사신(死神)'(김석희 옮김,창작과비평사,1만원)은 서 교수가 20세기 전반의 회화작품과 작가들의 삶에 관해 쓴 31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20세기의 악몽과 온 몸으로 싸운 화가들'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던 당대의 상황을 담아낸 작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다.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를 희화화해 나치의 신경을 건드리는 도전장이 된 오토 딕스의 '일곱가지 대죄'(1933),막다른 구석에 몰린 한 남자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준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1943),죽어가는 아이와 비탄에 빠진 어머니를 그린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1903) 등이 소개돼 있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1915)는 청춘의 욕망과 좌절을 애처롭게 비춰낸 작품.
서 교수는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운 투쟁과 세상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 속에서 몸부림칠 때 이 작품을 보고 격렬한 전율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노다 히데오의 '도회'(1934),일본인들의 옥쇄 자결을 그린 후지타 쓰구하루의 '사이판섬 동포,신절(臣節)을 다하다'(1945) 등 일본 화가들의 작품도 다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