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경영전문기자의 '경영 업그레이드'] 유연성에 대하여

주5일 근무제 논의 때문에 시들해졌지만 최근 수년간 노사 문제의 핵심 이슈는 '유연성'이었다. 사용자로선 경영환경이 어려울 땐 언제든 해고를 할 수 있고,반대로 좋아지면 곧바로 사람을 뽑아 쓸 수 있으면 유연성이 높다. 근로자로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도 조금만 눈을 낮추면 즉시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있어야 노동시장이 유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노동시장은 여전히 딱딱하기만 하다. 가정집을 겸하고 있는 가게가 있다고 하자. 아침 9시가 돼야 영업을 시작하는 가게와 손님이 벨만 누르면 언제든 문을 여는 점포,어느 쪽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같은 자원이라면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조직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유연성과 벽을 쌓고 있는 것이 회사 사회다. 수익을 올리던 부서라도 시장환경 변화로 돈을 벌지 못하면 없애는 게 옳다. 재능 있는 사원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근무부서를 바꿔주는 게 합리적 인사 관리다. 실제는 어떤가. 대부분의 경우 어떻게 하면 종업원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할 수 있을까를 목표로 조직이 짜여진 듯 갑갑하기만 하다. 일의 결과로 승부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소위 전문직에서조차 근무 환경은 빡빡하기만 하다. 유연성을 보장하는 재량 근로제가 이미 1997년말 노동법개정 때 도입돼 있는데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근로기준법(56조)은 '업무수행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는 기존의 출·퇴근과는 다른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연구개발 △정보처리 설계·분석 △취재 편성 편집 △디자인 △PD 영화감독 등이 해당 직종이다. 방송국 PD를 예로 들면 한 회 방송분을 만들기 위해 이틀을 꼬박 새워 일할 수 있다. 대신 일이 없으면 회사에는 나갈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그 방송물 수준이 어떠냐 하는 것 뿐이다. 실제는 어떤가. 며칠씩 날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 허다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촬영이 없는 날도 결근 처리를 당하지 않기 위해 회사에 나간다. PD뿐만이 아니다. 소위 전문직이라는 직종에서조차 야근은 야근이고,출근은 출근이라는 딱딱한 도식이 남아있다. 조직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것은 별도의 투자없이 현재의 자원으로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다만 경영자의 마인드가 딱딱하다면 말도 꺼내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