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북한경제] (1) '변화의 바람' .. 가격 현실화

북한 경제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은 최근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인 배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물가와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가 하면 환율도 현실화했다. 세금제를 도입하고 실적제(인센티브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대변하는 기관지들의 보도와 현지를 방문한 관계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어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과 미국 일본 등에 대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도 이같은 변화의 성공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분석하고 있다. ◆ 가격 현실화 =북한 경제의 가장 큰 변화는 계획경제와 사(私)경제의 이중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격을 현실화한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부족한 물품을 암시장으로 변한 장(場)마당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장마당의 물가는 국정가격의 수십배에서 수백배나 비싸다. 북한당국은 이를 방치하면 경제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고 판단, 쌀배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물가를 올리는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 대신 임금을 대폭 인상해 실질구매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북한 국가가격제정국 관리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물을 제가치대로 계산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보도). 어쨌든 이들 조치는 공급에 수요를 맞추는 계획경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을 북한 당국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조선신보는 평양발 기사에서 쌀값은 ㎏당 8전에서 44원으로 5백50배나 인상됐다고 전했다. 한국무역협회도 북한의 식량배급소가 '쌀 판매소'로 간판을 바꾸고 쌀값을 ㎏당 40∼45원(이전 8∼10전)에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금도 노동자 농민 사무원 등은 10배, 군인과 공무원의 급여는 4∼17배나 인상됐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같은 직종이라도 성과와 노동시간, 생산량 등에 따라 차등 지급을 확대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남한 인사들에 따르면 지하철 운임은 20전에서 20원으로 1백배 인상됐다. 미국 달러 환율을 종전 달러당 2.13∼2.21원에서 암거래 시세와 비슷한 2백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새로운 환율의 적용 시기는 물가 및 임금인상 등이 안정적으로 시행된 이후로 늦춰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의 북한 소식통들은 무(無)조세 국가인 북한이 최근 국가세무국을 신설, 사실상 조세제도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 계획경제 포기하나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정부 관계자와 북한경제 전문가들 사이의 평가는 엇갈린다. '계획경제 메커니즘을 정상화하기 위한 개선'으로 보는 시각과 '시장경제 도입'으로 분석하는 견해가 있다. 물론 북한당국은 일관되게 '사회주의 체제 강화'를 외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26일 자강도 희천시 공장을 시찰한 자리에서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게 하는 것이 우리 당이 내세우고 있는 사회주의 경제관리 완성의 기본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와 함께 "주체적인 계획경제 관리원칙을 철저히 관철하고 국가의 중앙집권적 지도를 확고히 보장하면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높이 발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신보는 이와 관련, 북한당국의 경제관련 조치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과는 다르며 북한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험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오승렬 통일연구원 경제협력실장은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라며 "암시장에서 돌아다니는 과잉화폐를 흡수해 공식부문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통일경제센터 김정균 실장도 "이번 조치의 목적은 정권의 유지, 발전을 위한 것이며 체제의 본질을 바꾸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사회주의 틀의 공고화를 외치고 있지만 최근의 조치들을 보면 실질적으로는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영식.권순철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