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농업경제'] (4) '농지정책' .. 준농림재판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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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신도시 진입구인 장항IC 주변에 빼곡히 들어선 창고들.
파란 지붕에 플라스틱판으로 짜여진 60여평 규모의 간이창고 앞엔 '버섯재배 중'이라는 조그만 쪽지가 내걸린 채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버섯재배는 여름철 습도조절이 생명인데 관리하는 사람은커녕 통풍구조차 눈에 띄지않는다.
버섯재배용 건축물로 등록한 다음 물류창고 등으로 불법전용을 한 것이다.
일산 김포 분당 구리 등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도시근교 농지가 급속하게 창고단지로 바뀌고 있다.
부동산뱅크 일산지점 박건부 사장은 "농림부가 올초부터 농지전용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농업 외에는 용도 변경이 제한된 농림지의 가격마저 연초대비 15%이상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상업예정지로 분류돼 있는 3백72평 규모의 장항동 한 농림지는 평당 3백9만원의 매수호가가 들어와 있다.
이 농지를 소유한 주인은 대지를 팔 경우 적어도 11억5천여만원의 처분소득을 당장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 일대 농지에 투기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지난 4월부터 농지전용허가권이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된데다 6월 지자체 선거 당시 각 출마후보들이 내놓은 선심성 공약 등으로 농지 전용규제가 대폭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도권에선 논농업직불제 등 각종 보조금에다 땅값 상승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지방에선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욱 커졌다며 허탈해 하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마늘과 쌀시장 추가개방 등을 놓고서도 수도권 농민들은 잠잠한데 반해 지방 농민들은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도권 농민들은 농지값 폭등으로 더 이상 농사 지을 생각이 없고 지방 농민들은 경쟁력 제고 등에 투입할 재원의 여력이 없어 농사를 포기하는 추세다.
이렇게 되는데는 농지정책에 대한 정부차원의 '마스터 플랜'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지난달 17일 △한계농지에 위락시설 등 건설 허용 △도시민의 3백평 미만 농지 소유 및 분양 허용 △1가구2주택 양도세 면제 추진 등을 골자로 하는 도시자본유치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관련 부처들은 철저히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준농림지역을 2003년부터 3개의 관리지역으로 세분화해 엄격히 관리키로 하고 '국토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안'을 올초 국회에 통과시켰다.
재정경제부도 1가구2주택 양도세 면제와 관련, 허용할 경우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을 차별하게 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
박헌주 국토연구원 기조실장은 "정작 국토종합개발에 관한 실권을 장악한 건교부 재경부 행정자치부 등과는 전혀 논의없이 농림부와 산하 단체 몇 군데가 모여 농지규제 완화를 푸는 것은 오히려 준농림지역에 이어 농림지마저 파괴시키는 난개발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농지전용 수요가 많은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농지 불법전용에 대한 총 고발건수가 5백35건으로 전체 고발건수(1천1백48건)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무분별한 농지정책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극단적인 환경론자나 농지보전주의자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국토개발을 뒷걸음치게 한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박석두 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농지개발을 아무런 계획없이 시작하다 잘못돼 여론의 비판을 받으면 바로 '규제강화'로 1백80도 선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현재 정부의 방향은 맞지만 이를 행정적으로 처리할 만한 시스템과 공무원들의 역량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성진근 충북대 교수도 "농림부 뿐만 아니라 범부처적으로 머리를 모아 장기적인 국토개발 계획과 세부적인 추진안을 세워 난개발의 재판을 시급히 막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