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제1주제 : 박사학위자 모셔가기 "이젠 전설"

"공대에 입학해서 학부 4년, 석사과정 2년, 박사과정 2년, 박사논문 준비 3년을 합쳐 11년째 공부에 매달리고 있어요. 내년 2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쓰느라 바다로 피서갈 틈도 없습니다." 서울대 공대 연구실에서 논문자료에 파묻혀 있는 이태찬씨(31)는 대뜸 '병역특례문제'부터 짚어달라고 한다. "박사학위를 따면 병역특례 업체에서 2년을 일해야 합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교에서 논문을 준비한 기간(3년)을 합쳐 5년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일반 현역으로 복무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어떤 점에선 특혜라고도 할 수 있지요." 요즘 이씨를 답답하게 만드는 건 2년의 근무기간이 아니다. 문제는 병역특례 업체를 찾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것과 대우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 "서울공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과장급으로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었던 것은 이제 옛날 얘기죠. 대리 자리도 구하기 어려운게 현실이에요. 그나마 병역특례 벤처기업이 많은 정보기술(IT) 분야는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지만 기계 조선 건축 토목 등 전통산업은 형편이 어렵습니다." 지난 2월 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황희섭씨(29)는 "교수 및 석.박사 학생과 교수가 따오는 연구 프로젝트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게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외부에서 받아오는 연구 프로젝트 내용이 석.박사 학생들의 개인적인 연구방향과 크게 어긋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안정욱씨(26)도 진로문제로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2월 건축학과를 졸업하게 될 친구 녀석이 건축설계사무소나 건설회사가 아닌 부동산 투자.컨설팅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전공을 살려봐야 공대출신들은 기업 연구소장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 뿐 최고경영자(CEO)는 거의 다른 전공자들 차지라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어요." 교수들 역시 교육현장의 이공계 위기를 절감하고 있다. 올 1학기 학부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재료공학개론'을 강의한 김상국 교수는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처음 계획했던 강의 수준을 낮출 수 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병기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예전에는 학부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이 석.박사과정으로 몰렸지만 최근엔 그런 추세가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대학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결국 대학내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해결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