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휴대폰의 유토피아 .. 김충일 <아리랑TV 사장>

coe3@arirangtv.com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1984'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소설은 1949년에 쓰여졌지만 미래사회를 정확하게 예견했고,특히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하는 '빅 브러더스'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는 데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지 오웰이 예언한 사회는 '디스토피아'다. 필자는 요즘 초등학생까지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보면 이것이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를 생각해본다. 바야흐로 '휴대폰 만능시대'다. 언젠가 해발 7백50m의 산봉우리에서 등산객이 자기집 동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에게 먹일 자장면을 주문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휴대폰은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비닐하우스 개폐기를 원격 조정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휴대폰 결제가 시작되면서 각종 금융 업무가 가능해졌고,미아 방지를 위해 핸드폰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나온 핸드폰이 사람간 정감을 끊어버릴 때가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회의를 시작하면서 한 첫 마디는 휴대폰을 꺼달라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런 당부를 했을까. 병원은 물론 각종 공연장에서도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어댄다. 청각의 침해도 분명 사생활 침해다. 우리는 타인이 내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것에는 민감하면서도 청각을 침해당하는 데는 관대하고 무신경한 것 같다. 이같은 휴대폰은 사용자에게 생활의 편의성을 제공해 인간의 의식까지 바꿔놓는다. 우리는 단 하루도 핸드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 힘들어졌다. 그 어떤 장소에 있어도 벨소리를 울리고 답변을 강요한다. 게다가 휴대폰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간에겐 이제 '홀로 설 땅'이 없게 된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 루이스 브랜디즈가 19세기말 개념화한 '홀로 남겨질 권리'는 사라지고 만다.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1984'에선 윈스턴이 하루 24시간 텔레스크린에 감시당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선 몰래카메라와 각종 감청장비들이 작동되고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테크놀로지만 숭배할 때 인간의 정신은 거세되고,그 상황이 곧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유토피아는 인간의 몸과 정신이 자유롭게 숨쉬는,바로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