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제1주제 : 서울공대 출신 CE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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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대만을 번갈아 가면서 1년에 한차례씩 열리는 동아시아 석유화학회의는 서울대 화공과 출신 CEO(최고경영자)들의 동문회로 통한다.
낯선 얼굴과의 첫마디가 '몇기인가'다.
1950~60년대 화공과 졸업생뿐만 아니다.
70년대 이후 기계과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 냈다.
서울대 공대는 자타가 인정하는 이공계 분야 스타의 산실이다.
서울대 공대인들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현역 CEO로 뛰고 있는 서울대 공대인을 통해 그 비결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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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학번 '변대규 휴맥스 사장' ]
-1979년 영남고 졸업
-83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졸업(79학번)
-89년 서울대 대학원 제어계측공학과 졸업(박사)
-85년 일진전자 연구팀장
-87년 삼성반도체 연구팀장
-89년 건인시스템 대표이사
-현 휴맥스 대표이사.벤처기업협회 수석부회장
79학번 제어계측학과 출신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취업 기회가 많았다.
지난 83년 학부를 졸업했으며 대학원은 85년부터 87년 사이에 마쳤다.
이 때부터 젊은 연구원들의 창업 붐이 일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이나 대기업 연구원 등이 고작이었던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현상이다.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창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기술에 대해서 자신만 있으면 대기업 연구소로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첨단 기계 시스템을 연구하는 제어계측공학과는 공대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기술이나 시스템을 내놓을 가능성, 창업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컸다.
대학시절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1학년이던 79년에는 10.26 사건이 터졌고 80년에서 81년에는 학교 안에서 경찰과 학생들간 대치가 이어졌다.
대학원을 마친 뒤 석사장교로 군 복무를 끝내고 일진전자 연구팀, 과학기술청, 한국전력기술연구원 등에서 5년간 연구팀장으로 일했다.
과 후배인 김용훈(현 파인디지털 사장) 등 모두 5명의 동기.후배들과 함께 봉천동 작은 사무실을 빌려 창업에 나선 것은 89년.
당시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융자받으러 갔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신보 쪽에서 집 등기부 등본을 떼오라고 했다.
"하숙하는데요"라고 했더니 창구 직원이 이상한 듯 쳐다봤다.
사업은 어렵지만 그래도 굴러갔다.
특수계측기, TV화면 자막 처리기 등을 만들면서 회사 기반을 다졌고 99년부터는 위성방송 수신용 셋톱박스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셋톱박스 시장에서 소니 파나소닉 등 세계 일류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다.
사업하는게 쉽지는 않다.
한때 각광받던 벤처의 거품도 어느 정도 꺼졌다.
하지만 기술이 있는 기업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
공대 후배들에게는 "확실히 보장된 것은 없지만 도전해서 성취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꿈을 크게 갖고 도전하면 반드시 대가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