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집값] (下) '80년대말 주택대책'
입력
수정
지난 80년대 후반 공급부족에 시달리던 주택시장에 투기열풍이 가세하면서 집값이 폭등, 사회불안으로 번졌다.
81년 70.5%에 머물렀던 주택보급률이 87년에는 69.3%까지 떨어졌고 집값은 자고 나면 오를 정도였다.
89년의 경우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값은 불과 3개월만에 50%나 오르기도 했다.
계층.지역간 갈등이 심화되고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6공화국은 국정운용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 대책의 주요 골자는 '주택 2백만가구 건설'과 '5개 신도시 개발'이었다.
2백만가구 건설계획은 88∼92년에 걸쳐 매년 연평균 40만가구를 건설하는 계획이었다.
이같은 공급물량은 이전의 5년간 연평균 주택건설물량보다 1.7배 늘어난 것이었다.
공급방식도 공공주택 90만가구, 민영주택 1백10만가구로 구성해 소득계층별로 적절히 분배되도록 조정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정부재정 국민주택기금 주택은행의 민영주택자금을 통해 25조원을 조달해 투입했다.
수도권 5개 신도시(1천4백80만평) 개발은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
분당(5백69만평) 일산(4백72만평) 중동(1백63만평) 평촌(1백49만평) 산본(1백26만평)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해 29만3천가구를 공급했다.
1백20만명을 수용하는 새로운 주거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택지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공영개발을 담당하는 토지공사 주택공사 지방자치단체 등에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확대하고 시.도의 도시개발공사와 공영개발사업단을 신설했다.
당시 건설부 기획예산담당관으로 실무를 주도했던 강윤모 전 건교부차관(현 해외건설협회장)은 "도시지역의 주택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주택공급물량 확대밖에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며 "이같은 정책은 분당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92년부터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해 90년대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유대형 기자 yoo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