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첫째권 '내경편' 출간..동의과학연구소, 원문과 한글 대역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을 단 책은 수없이 많지만 한의학 전공자 외에 실제로 '동의보감'을 온전히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내용이 쉽지 않기도 하지만 마땅한 우리말 번역본이 없는 탓이다. 한의학과 동·서양 철학 및 과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연구단체인 동의과학연구소가 지난 93년 '동의보감 강독회'를 구성해 번역에 나섰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이 연구소가 10년간의 작업 끝에 원문과 한글을 대역한 '동의보감'의 첫째권 '내경편'(휴머니스트)을 내놓았다. 번역문이 매끄럽고 쉬운데다 '동의보감'에 인용된 많은 옛 의서들을 일일이 밝히고 풀이한 3천여개 역주가 돋보인다. 번역 작업을 이끌어온 박석준 소장(호서대 교수)은 "번역 자체보다 출전을 확인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동의보감'을 '짜깁기한 책'이라며 과소평가한 면이 적지 않았어요. 하지만 '동의보감'은 허준 선생이 당대의 중국 의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독자적인 의학과 임상경험을 총괄한 소중한 지적 유산입니다. '동의보감'에 인용된 책의 출전과 내용을 밝힌 것은 허준 선생의 편집 의도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지요." 지금까지 나온 번역본 중 북한판 '동의보감'은 훌륭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 때문에 일부 내용이 누락돼 있고 지난 74년 남산당에서 나온 번역본(허민 옮김)은 한의학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이에 비해 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한의학 철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을 공부한 사람까지 참여해 다양한 관점에서 '동의보감'을 해석하고 역주를 단 점이 특징이다. "'동의보감'에는 유교나 도교는 물론 불교적 세계관도 반영돼 있습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신형(身形)의 경우 인식론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한의사들이 제대로 읽어내기 어려운 철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동양철학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원전에 인용된 문장이나 책의 시대적 배경,철학적 사유의 바탕에 대해 철학 및 자연과학 전공자들의 설명을 듣고 나면 글자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저절로 해결되더라는 설명이다. "'동의보감'은 치료(처방)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 의서와 달리 사람의 몸을 화두로 삼고 있어요. 그래서 양생과 섭생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를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서들이 병의 외인(外因)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것과 달리 '동의보감'은 몸의 안팎을 기준으로 해 병 약재 치료가 뒤따르는 형식이지요." 이번에 나온 첫째권 '내경편'은 인체를 이루는 본질적 요소들인 정(精) 기(氣) 신(神) 혈(血)에 대해 설명한 다음 몸 내부의 상태를 나타내는 여러가지 단서들,오장육부,대소변까지 다루고 있다. 박 소장은 "'동의보감'을 보면 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스스로 몸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동의과학연구소는 앞으로 10년에 걸쳐 '동의보감' 전체를 5권으로 번역해낼 예정이며 현재 2권까지 번역을 마친 상태다. 판형도 국배판(전문가용) 신국판(학생용) 46판(일반용)의 세가지로 발간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동의보감'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