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제1주제 : 'KIST 성과와 과제'

서울 불암산 자락의 홍릉에 자리잡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지난 1966년 한국 최초의 종합연구소로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35년동안 과학기술 연구소의 맏형 역할을 해왔다. 현재의 정부출연연구소들은 대부분 KIST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소가 잇따라 태어나면서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과학원(KAIST)와 통합되면서 정체성(Identity)마저 위기를 맞고 말았다. 요즘에는 다른 공공 연구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연구과제를 따내느라 전자통신연구소 화학연구소 등과 경쟁하기도 한다. 한국최고의 두뇌로 평가받던 KIST가 연구 과제를 따내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KIST가 왜 이렇게 변했는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 핵심역량의 분산 =기계연구소 화학연구소 전자통신연구소 등 대덕에 있는 대부분의 출연연들이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분리된 것이다. 현 과학기술연구원에는 재료, 시스템, 환경공정, 생체과학 분야 뿐이다. 핵심으로 내세울 만한 분야도 특별히 찾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수탁과제 중심의 개별적인 연구가 핵심역량을 분산시켰다"고 분석한다. 최근 KIST는 나노와 생명공학 분야를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사업 추진전망이 밝지는 않다. 나노분야 기술개발을 위한 시설인 나노종합 팹(Fab)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유치했기 때문이다. 연구 인력확보도 만만치 않다. 사면초가에 빠져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독특한 색깔이 없다 =다른 출연연구소들과 겹치는 분야가 너무 많다. 시스템 분야는 전자통신연구소와 겹치고 재료분야는 기계연구원 및 화학연구원 등과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이러다 보니 수탁과제를 따내기 위해 다른 연구소와 심하게 경쟁할 수 밖에 없다. 80년대 이후 전문 분야별 출연연구소들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연구분야 중복성 논란이 계속해서 끊이질 않았다. 이 뿐만 아니다. 수탁과제를 따내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을 데려와 용역을 맡기기도 했다. 국가 중점 연구기관이 개별 연구과제로만 승부를 거는 연구소가 돼 버린 것이다. 이러한 '개별 프로젝트 베이스'로는 '단기' '단일' '응용ㆍ개발' 패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장기' '융합' '기초ㆍ원천'은 꿈도 꾸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 재원 구조가 취약하다 =현재 KIST의 고유 사업비는 전체 수행과제의 36%에 불과하다. 나머지 63%는 외부로 유치해온 수탁과제다. 연구소 스스로 10년 앞을 내다보고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할 수 있는 '연구소 베이스' 예산확보가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연구인력의 역피라미드 구조 =연구인력의 경우 책임급이 1백97명으로 선임급(78명)에 비해 2배이상 많다. 특히 환경공정 분야의 경우 책임급 36명에 선임급은 고작 6명이다. 인력의 역피라미드 구조가 심각한 수준이다. 부족한 인력을 대부분 파트타임이나 포스트 닥(박사후 과정)으로 채우고 있다. 이같은 인력구조 문제가 KIST의 위상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 KIST가 나아갈 방향 =KIST는 이제 미래형 기초원천 연구에 눈을 돌려야 한다.새로운 영역을 연구하면서 혁신적 원천기술과 아이디어의 공급원 역할을 함으로써 전문출연연은 물론 대학 기업연구소와 차별화ㆍ특성화해야 한다. 최근들어 10년 앞을 내다본 미래형 원천기술 개발의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술융합으로 복합연구 수요도 크게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출연연구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있지만 이같은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대학이 이런 역할을 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KIST가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과기부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모델을 거론한다. "만약 KIST가 기초ㆍ원천연구에 특화하겠다고 나선다면 적어도 향후 10∼20년간은 그 존재이유가 확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