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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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에서 한 소년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소년은 소매치기 조직에도 가입했는데 작은 키에 머리도 썩 좋지 못해 항상 아슬아슬하게 우스꽝스럽게 도망다녔다.
이 소년이 바로 찰리 채플린이었다.
어느날 그는 세계 최고의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30년 간이나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연기를 익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코미디계의 왕으로 등극한 채플린은 생활속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온 연기로 사람들을 웃겼다.
우리 코미디계의 황제로 불린 이주일씨(본명 정주일)가 타계했다.
그 역시도 어린 시절 가난과 온몸으로 맞서 싸워야 했고,악극단의 사회자로 연예계에 발을 디뎠지만 못생긴 얼굴에다 볼품없는 체구 때문에 끼니 떼우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마흔살이 되어서야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나,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대머리가 닮았다 해서 출연정지를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80년대 최고의 유행어였던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는 자신의 한과 설움이 켜켜이 쌓인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는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일단 한번 와 보시라니깐요" "콩나물 팍팍 무쳤냐" 등 부지기수로 많은 말을 유행시키고,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 '오리춤'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켜 나갔다.
이주일씨는 넘어지고 다치고 맞고 때리는 식의 슬랩스틱 코미디언으로 출발했지만 그의 웃음 뒤에는 분명 어떤 힘이 있었다.
그는 밑바닥 인생의 역경을 헤치고 살아왔기에 웃음의 의미가 각별했다는 생각이다.
웃음의 미학은 인생의 진실에서 출발한다고 할 때 그가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한때 국회의원을 했던 그는 "코미디 한수 배우고 간다"는 그다운 독설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평생을 남을 웃기면서 살았던 이씨는 폐암의 고통속에서도 금연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등 금연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했다.
채플린이 세계전쟁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면 이주일씨는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즐거움을 주었다.
할 일이 많다던 그에게 62년의 생애는 너무 짧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