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판치는 증시] (上) '델타정보통신사건의 전모'

시장에 큰 충격을 준 계좌도용사건이 발생한지 1주일도 채안돼 에이디칩스 솔빛텔레콤 아일인텍 모디아 등 코스닥 기업들이 줄줄이 주가조작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정상적인 시장인지,아니면 사기판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특히 기관계좌를 도용한 델타정보통신 불법매매사건은 사이버거래 시스템의 헛점을 노출시켰다. 또 작전의 전형적 패턴이 총동원된 "작전의 종합판"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주주 전주(錢主) 증권사직원 등 등장인물이 다양하고 대주주 지분은 사건발생직전 몇바퀴 돌기도 했다. 전주가 주가조작을 담당하는 "선수"를 고용하거나 지분을 장외에서 사고팔면서 주가를 띠우는 전형적인 증시작전 패턴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이번에 처음 드러난 기관계좌 도용 거래는 사이버시스템의 맹점을 드러낸 것이었다. 허름한 PC방에서 감행된 '1분30초간 기습'에 세계에서 사이버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한국 증시의 신뢰는 무참하게 허물어졌다.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23일 서울 신촌의 한 PC방.오전 10시5분30초에 델타정보통신 1백만주를 하한가로 사자는 주문이 이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90초 동안 모두 5백만주의 주식을 거둬들였다. 주식을 산 주체는 현대투신운용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현대투신운용의 계좌를 도용한 작전세력이었다. 주문을 낸 대우증권 직원 안모씨(33)는 정확히 두 시간후 가족과 함께 해외도피에 나섰다가 29일 오전 영국 스위스를 거쳐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처지가 됐다. 이번 사건에 관해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은 1분30초간의 기록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누가 주도했는지 아직 명확지 않다. 증권전문가들은 증시작전은 은밀하게 이뤄지긴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몇가지 유형이 얽혀있고 등장인물간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에서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작전이 몇개월전부터 준비됐다는 점이다. 하루 평균 2만~3만주 거래되던 델타정보통신 주식은 7월초부터 몇십만주 단위로 거래량이 급증했다. 김청호씨 등 이 회사 대주주가 임천무씨에게 지분을 넘기기로 계약했다는 공시가 나온 7월15일엔 주가가 급등했다. 인터넷엔 델타정보통신에 작전이 걸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며 하루 평균 거래규모는 무려 백만주단위로 뛰었다. 불법매매사건이 나기 전날인 지난 22일엔 주가가 5천원을 넘어섰다. 대주주지분 변동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임천무씨가 김청호씨 등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았지만 그는 한번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건의 중심인물로 부상한 정모씨와 임천무씨는 인척관계다. 정씨는 쌍용디지탈 조성인 사장에게 델타정보통신 인수자금을 빌려달라고 의뢰했고 조 사장은 자금조달을 도와줬다. 회사를 인수해 잘 경영해보자는 말을 순수하게 믿었으나 정씨측이 배신하고 주식을 털어버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을 토대로 증권가에선 두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첫째는 정씨측이 대우증권 안씨 등과 짜고 작전을 걸었으나 대주주들이 주식을 매도하려한다는 것을 알고 장외에서 대주주 지분을 사들였다는 것.쌍용디지탈 조 사장측의 자금을 끌어들여 모자란 인수자금을 채웠지만 정씨는 수백만주를 처분할 길이 없자 계좌도용이라는 극한 수단을 택했다는 추정이다. 물론 대우증권 안모씨에겐 선수금을 주고 작업이 끝난 뒤 해외도피를 지원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대주주 지분을 사들인 정씨 등이 제3의 세력에 주식의 일부를 넘기기로 계약했고 주식을 받기로 한 측은 확실한 매수자를 요구했다는 것.따라서 안씨와 짜고 기관투자가 계좌를 도용하는 수법을 썼다는 추정이다. 제3의 세력은 기관이 주식을 샀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잔금을 지급했고 이들은 돈을 받아 잠적했다는 게 시나리오의 골자다. 이 경우 제3의 세력이 계좌도용 여부를 모르고 있었다면 돈을 찾는 데도 법률적 문제가 없을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야 말로 증시가 추잡한 '머니게임'의 각축장으로 변질된 단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감독기관이 작전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한편 투자자들도 미심쩍은 종목은 쳐다보지 않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