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 경협의 성공조건 .. 南成旭 <고려대 북한학 교수>

북한의 외교협상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북측이 제2차 경제협력추진위를 통해 부족한 쌀과 비료 및 경의선공사 건설자재까지 획득하고 여유있게 서명하던 시간,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방북이 평양과 도쿄에서 전격 발표됐다. 김정일 위원장이 연해주를 방문해 동해선 연결을 미끼로 러시아의 관심을 유도한 지 한달도 안돼 부족한 물자를 남측에서 지원받고,일본에서는 수십억달러로 추산되는 식민지 배상금을 받아내 경제강국을 건설하려는 전략은 주변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외교의 혜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뒷북치기''퍼주기'라는 오명을 얻는 우리의 외교 및 대북협상력과 비교된다. 북측은 경협위를 통해 남측으로부터 충분한 것을 얻어냈다. 쌀은 당초 예상량 30만t보다 10만t을 더 받아냈고,비료 10만t에다 '경의선 연내 연결'명목하에 수백억원 상당의 자재지원 약속까지 받아냈다. 어차피 '쌀카드'는 이미 7차 장관급 회담에서 물밑으로 제시된 사항으로서 북측은 지원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양을 확보하는가가 관건이었다. 북측은 협상 중간에 최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경의선 착공은 군부와 협의해야 하는 문제로서 자신들에게는 합의권한이 없다는 협상 테크닉까지 구사했다. 군부가 김정일 위원장 손안에 있다는 것은 북한을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사항을 협상테이블에서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남측은 일단 경의선 착공 날짜를 못박음으로써 연내 완공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동해안 임시도로의 11월 완공도 합의사항으로 발표됨으로써 금강산 육로관광,이산가족 상봉단 통행로 확보 및 동해안 철도연결 등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과거 부담스런 안건은 합의가 돼도 구체적 시기를 확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일보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군사실무회담 날짜가 9월18일 이전으로 표시된 것은 여전히 본질적인 군사문제 해결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선이후난(先易後難) 전략하에 비교적 쉬운 경협을 통해 화해협력을 추구하고 나중에 어려운 군사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에서는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철도연결이 비무장지대 통과라는 특수 여건아래 진행됨을 고려할 때 합의에 균형감각이 결여된 것을 알 수 있다. 하여튼 이번 합의는 '미완'이기는 하나 집권 후반기 경협일정이 구체화됐다는 사실에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거의 1조원 상당의 경제적 지원이 약속된 만큼 다음과 같은 대응방안이 마련돼야 국민들의 '퍼주기'우려가 가시고 경협이 성과를 거둘 것이다. 첫째,북측이 쌀과 비료를 받은 후 경의선 착공 행사만 가진 뒤 각종 구실을 붙여 연결공사를 지연시킬 가능성에 대한 대응 장치를 갖춰야 한다. 상당수 국민들은 각종 남북합의와 관련한 화려한 정치적 연출과 현실적 실행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공사진행과 쌀 지원 속도를 연계해 조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둘째,집권 후반기 무리한 새로운 합의보다는 각종 발표사항에 대한 '실천과 이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향후 북측은 새로운 제안과 합의를 반복함으로써 남측을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최근 경제개선관리 조치와 맞물려 현란한 외교전략으로 남측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대기업들의 북측 투자 유도 등도 은밀하게 제의할 것이다. 투자결정은 외부의 입김보다는 기업 스스로 경제성 판단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으로 한반도는 구한말 열강의 각축을 연상시키고 있다. 평양방문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회복 의도로서,남북문제가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일제시대 경의선을 건설한 일본은 당연히 철도 연결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중국과 KEDO를 통해 북한 진출을 암중모색중인 미국의 이해 역시 복잡하다. 정부는 경협에 들어가는 국민세금이 한반도 평화안정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역동적인 주변정세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oskysung@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