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 강타] 김천은 폐허 그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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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는 내륙의 중심인 경북 김천시를 물위에 뜬 도시로 만들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태풍이 뿌려댄 폭우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던 김천은 하루가 지난 1일 조금씩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으나 저지대는 아직까지도 물에 잠긴 모습 그대로였다.
물이 빠진 곳은 개펄을 연상케 할 만큼 온통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도시 외곽을 가로지르는 감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황금동 황금시장은 침수 하루가 지난 1일 비가 그치고 간간이 햇볕도 비치는 가운데 오물을 뒤집어쓴 물품을 씻고 상점 바닥을 쓸어내는 상인들로 분주했으나 폐허 그 자체였다.
수돗물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빗자루로 바닥의 진흙을 쓸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모암동 한 아파트에서는 지하실에 물이 들어차 전기와 가스가 중단되는 바람에 입주자들이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기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다.
아파트 주민 김모(38.회사원)씨는 "아기 분유 끓일 물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아내와 아기를 대구에 있는 동생 집으로 보냈다"며 한숨을 지었다.
이틀간 2백97mm의 폭우가 쏟아진 김천시에는 8명사망.8명실종.1명부상 등 1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50년 가까이 살아 온 임모(46.식당운영)씨는 "병자호란때 엄청난 수해가 있었다는 얘기를 어릴적부터 들어왔으나 이번과 같은 수해는 난생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태풍 "루사"는 김천을 지나는 많은 도로와 철로도 침수.유실시켰다.
황금동 감천철교의 교각 2개가 감천의 물살에 붕괴되면서 31일 오후 9시30분부터 경부선 철도운행이 중단됐다.
국도도 김천도심을 통과하거나 부근을 지나는 3.4.30.59호선 중 4호선의 1개차로만 통행이 가능한 실정이다.
강변에 몰려든 시민들은 "열차가 지나갈 때 교각이 붕괴됐으면 어쩔뻔 했냐"며 간밤의 끔찍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황금동 달동네의 급경사 지역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20여가구중 상당수는 인기척이 없었고 몇 안남은 주택들도 가파른 산자락 바로 밑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다.
대부분 난생 처음 수해를 겪어본 김천 시민들은 어느 지역보다도 충격이 큰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마냥 넋을 놓는 대신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챙기고 집 안팎을 쓸며 수마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