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코너] 미도파 두 경영인의 明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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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파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48년간 사용해온 간판을 롯데백화점으로 바꾸고 3일 영욕의 세월을 마감한다.
미도파는 70년대까지 우리나라 백화점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롯데와 현대에 밀리기 시작했다.
쇠락의 결정적 계기는 97년의 경제위기.
모기업 대농에 서준 9천억원의 채무보증과 현금유동성 위기로 미도파는 대농과 함께 동반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대농그룹 '총사령관'은 박영일 전 회장이었다.
창업주 박용학 전 회장의 아들이다.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자기업인 계열사들을 모두 버리고 현금이 들어오는 유일한 계열사인 미도파를 살리는 것이었다.
미도파를 진두지휘하기 위해 사무실을 미도파 상계점 9층으로 옮긴 박 전 회장은 직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이날 미도파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언급하면서 "미도파 창립기념식에서 아내를 만난게 애정의 출발점"이라고 술회했다.
이로 인해 그는 직원들에게 '최후의 로맨티스트'로 비춰졌다.
미도파는 98년 9월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인은 강금중 전 서울은행 상무(62).
여느 법정관리 기업처럼 그도 임직원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이에 따라 부도 직전 7백91억원에 달했던 판매관리비가 1년만에 5백41억원으로 줄면서 2백5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부도 직전 22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년만에 20배 가까운 4백억원을 돌파했다.
법정관리인으로 첫 출근하던 날 노조원과 협력업체로부터 '유통 문외한'이라며 삿대질당했던 강 대표는 1년만에 훌륭한 유통인으로 변신했다.
악화된 건강을 무릅쓰고 혼신의 힘을 쏟은 결과였다.
미도파는 최근 5천2백40억원의 금액으로 롯데에 팔렸다.
법정관리기업중 성공적인 매각 사례로 남게 된 것.
강 대표는 겸손하게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조용히 무대 뒤로 퇴장했다.
로맨틱한 2세 경영인과 성공한 법정관리인.
두 사람의 대조적인 그림자는 기업인의 현실 인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