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100여社 어음 안쓴다..중기청-한경 어음제도 활용 실태 조사

기업간 납품거래에서 어음거래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어음을 발행하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하는 기업도 약 1백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소기업청과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5~6월 두달동안 연간 매출액 8백억원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어음제도활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귀뚜라미가스보일러 퍼시스 휴맥스 한일 자화전자 등 1백여개사가 어음을 전혀 발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중 상당수가 중견기업이다. 기업들이 부품을 납품받고 어음을 발행한 비중은 전체의 4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999년도의 어음발행비중 63.9%에 비해 22.3%포인트 줄어든 것이며 지난해의 50.3%에 비해서도 8.7%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업종별 어음 발행비율을 보면 섬유업종의 경우 전체의 15%만이 어음을 발행, 가장 낮았다. 또 전기전자 22.8%,화학 23.6%,철강금속 26.5%,음식료품 30%,잡화류 35.6% 등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어음거래가 급격히 줄어들자 외환위기 이전 1천8백여개사에 이르던 명동 역삼동 등 서울지역의 어음할인 사채업체수가 현재는 4백50여개사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채업체들도 개인카드대출 및 급전대출 사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어음거래가 줄면서 거래상대방의 부도로 연쇄도산하는 기업수도 감소,지난 99년 1천5백여개사에서 올들어서는 40여개사로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이 어음발행 비중이 계속 축소되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를 전후해 거래상대방의 부도로 연쇄부도를 당한 기업이 늘어나면서 어음을 받으려는 기업이 급격히 감소한데 따른 것이다. 또 기업구매자금대출 기업구매전용카드 외상매출채권대출 등의 활용이 늘어난 것도 어음발행을 줄인 요인이 되고 있다. 어음거래가 줄어들자 몇몇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물품구입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아 거래계약이 깨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어음을 발행하지 않는 대신 납품단가를 최대한 깎는 현상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어음 안주고 안받는 업체들=어음을 전혀 발행하지 않고 남의 어음을 받지도 않는 기업은 대체로 중견기업들이었다. 흔히 업계에서 알짜기업으로 손꼽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가운데는 물품을 납품받는 즉시 전액 현금으로 지급해 주는 기업들도 있었다. 부산에 있는 철강선 제조업체인 만호제강과 경주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인 한일도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가능한 한 자기가 납품한 대금도 현금으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청주에 있는 마그네틱전자 부품업체인 자화전자는 '어음 안주고 안받기 운동'의 선구자다. 이 회사는 중소기업으로부터 소재를 납품받아 마그네틱부품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 따라서 자기제품을 현금으로만 팔고 협력업체로부터 구매한 물품은 전액 현금으로 결제한다. 자화전자는 월 12억원 정도를 납품받는 즉시 대금을 현금으로 주고 있다. 어음을 발행하지 않는 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전기전자업종이 가장 많았다. 유선통신기기업체인 웰링크를 비롯 방송수신기 제조업체인 자네트시스템,컴퓨터제조업체인 주연테크,전자카드 제조업체인 케이디넷 등이 현금성으로 납품대금을 지급했다. 프로칩스 한국동경전자 케이엠더블유 코스모링크 등 전자업체들도 어음을 발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리관련 업종 중견기업들도 아예 어음을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유리의 관계회사인 상고방베트로텍스와 오웬스코닝은 어음활용이 전혀 없었다. 그동안 어음거래가 상습화돼 있던 섬유업종에서 어음거래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는 쌈지가 대표적이었다. 이 회사는 월 23억원 규모의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준다. 섬유업종에선 이랜드도 어음을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어음을 발행하지 않는 업체 가운데 어음대체 결제제도인 기업구매자금을 활용하는 기업은 한솔교육 월드텔레콤 지오다노 웅진닷컴 등이 대표적이다. 한솔교육은 월 약 32억원 규모의 기업구매자금을 활용하고 웅진닷컴은 월 54억원 이상의 기업구매자금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앨트웰 삼성탈레스 신세계인터내셔날 일양약품 등은 기업구매 전용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이중 앨트웰은 월 1백30억원 이상의 납품대금을 전용카드로 지급해 주고 HSD엔진은 월 약 1백70억원을 전용카드로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비스 등은 외상매출채권 대출을 활용해 어음을 발행하지 않고 있다. ◆장기어음 사라진다=장기어음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도엔 대기업이 납품대금 지급을 위해 발행한 어음중 4개월 이상의 장기어음이 41.1%에 달했다. 그러나 올들어 이같은 장기어음 발행은 크게 줄었다. 4개월 이상 장기어음을 발행한 경우는 전체의 3.1%에 불과했다. 이처럼 장기어음 발행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것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납품업체를 동반자로 인식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기업이 품질 좋은 부품을 납품해야 최고급의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체들은 어음발행을 줄이는 한편 협력업체에 대해 납품대금 지급에 앞서 부품개발비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 기아 대우 등 자동차 생산업체들도 단 한개 부품의 하자로 리콜을 해야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품질향상을 위해 부품업체에 각종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