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따라잡기] 고액권 발행 논란 .. 5,10만원권 발행 요구 확산

5만원권이나 10만원권 등 고액권을 발행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만원권이 등장한지 벌써 30년이나 됐다. 실생활에선 '1회용'인 10만원권 자기앞수표가 연간 10억장 가까이 지폐처럼 통용되는 마당이다. 그동안 버스요금이 30배, 쌀값이 20배로 뛸 만큼 화폐가치도 떨어졌다. 때문에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선 국민 10명중 8명이 고액권 발행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액권 발행시 물가가 뛰고 뇌물이나 부정부패의 단위가 커질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아 고액권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 고액권 왜 필요한가 고액권의 필요성은 1만원권의 지나친 '장기 집권'에서 출발한다. 1만원권이 등장한 것은 지난 73년. 1인당 국민소득은 73년 3백94달러에서 지난해 8천9백달러로 20배 이상 늘었고 물가 수준도 20∼30배로 높아졌지만 최고액권은 30년째 1만원권이다. 1만원권이 처음 등장할 당시 1만원이던 쌀 한 가마(80㎏) 가격이 지금은 20만원을 웃돌고 20원 하던 버스요금은 6백원이 됐다. 경제 규모와 화폐 단위 사이의 이같은 괴리를 자기앞수표가 메우고 있는 것도 문제다. 1만원권은 한 번 발행하면 평균 4년 정도 쓰지만 수표는 재사용이 불가능해 유통기간이 평균 1주일에 불과하다. 게다가 수수료 보관비 등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0만원권 수표의 각종 비용은 연간 약 4천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결국 이런 비용은 은행의 수수료나 대출금리에 반영돼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외국과 비교하면 고액권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미국 최고액권(1백달러)은 원화 가치로 12만원에 가깝다. 대다수 선진국들의 최고액권은 원화의 10배를 웃돈다. 1만원권의 구매력은 멕시코 폴란드 체코 등 한국과 경제수준이 비슷한 나라의 최고액권보다 70∼80% 가량 낮은 실정이다. ◆ 발행 논의는 답보상태 고액권 발행에 대한 반대 논거는 크게 두 가지. 화폐단위가 커지면 인플레이션이 조장될 가능성이 큰 데다 고액의 뇌물 상납이 용이해져 부정부패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뇌물로 건네진 사과상자에 4억원이 아니라 40억원이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는 이젠 설득력이 약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의 안정기조가 유지되고 있어 고액권 발행에 의한 인플레이션 유발 효과는 극히 낮아 보인다"며 "'검은 돈'의 확산 문제도 부패관련 법안 마련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고액권 발행을 놓고 과거 몇차례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 정부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6월 말 한은 내에 고액권 발행과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을 연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정도가 고작이다. 박태원 한은 발권국장은 "국가 전체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바로 시행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자료를 모으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