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하향 압력

주가가 다시 700선으로 급락했다. 전날 이라크의 UN 무기사찰 수용 소식에 따른 강한 반등이 하루만에 무산되면서 향후 시장 접근 어려움을 예고하는 모습이다. 개인과 외국인의 동반 매수로 700선을 지켜냈지만 시장 분위기는 당장 700선 지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쪽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의 소비심리 악화에다 제조업 지표마저 안좋게 나와 우려감을 높였고 게다가 기업체 실적도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을 위한 바람잡기가 계속되면서 증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추석이후의 증시로의 유동성 유입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최근 펀더멘털 불안 등 주변 여건을 볼 때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경제지표 악화가 지속될 경우 전저점 660선 부근까지 일단 감안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일선과 60일선이 수렴하면서 변동성 확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프로그램 매수차익잔고 소진과 함께 700선 전후에서의 대기매수세가 여전히 강하지만 섣부른 예단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당분간 관망하면서 시장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미국 경제지표 악화 시장심리 장악 = 17일 나온 미국의 8월 산업생산이 올들어 처음 감소하며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최근 주가하락에 따른 개인 소비위축과 기업체의 순익전망치 하향이 잇따른 상황에서 이러한 소식은 악재로서의 영향력을 증폭했다. 미국 산업생산은 다른 지표와 달리 올들어 그나마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왔고 8월엔 전월대비 02% 상승하리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0.3% 하락으로 나타나 부담을 주기에 충분했다. 공장가동율도 76.2%에서 76.0로 다시 위축 국면을 보여 기업실적 개선 지연에 따른 미국 증시의 위축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산업생산의 부진은 한달간의 지표라는 점에서 금융시장 불안 등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을 감안할 때 향후 경기 흐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강화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현대증권 엄준호 선임연구원은 “한달 지표로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지만 8월 산업생산 감소는 기업체의 재고소진에 따른 투자가 일단락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기업체의 매출과 순익 모두에서 감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신탁증권 정무일 이코노미스트는 “산업생산, ISM 제조업지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베이지북, 소비심리지표, 실업수당신청건수 등 부정적인 지표가 이어져 왔다”며 “미국 경기의 이중침체나 저성장 국면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는 24일로 예정된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통화정책 기조의 향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 및 투자 반전을 위한 뚜렷한 묘안이 없는 상태에서 금리인하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금리인하로 인한 주택시장 버블, 디플레 압력 등 부작용이 커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 맞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 700선 메리트 감소 국면 = 박스권 상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750선 저항선을 확인한 이래 최근엔 720대 전후에서 상승흐름이 막히고 있다. 이라크 관련 불안감의 완화에도 불구하고 기업실적이라는 펀더멘탈에 시장관심이 집중되면서 지수흐름이 차차 아래쪽을 향하는 모습. 경기회복의 불투명성과 기업들의 잇따른 실적악화 경고가 시장을 압박하고 있어 시장 모멘텀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최근 지지력이 수차례 확인됐던 심리적 지지선 700선도 큰 의미를 두기 힘든 상황에 이르고 있다. 박스권이 점차 좁혀지고 있으며 당분간 악재가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하락세 연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매수 시기를 다소 늦춤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LG투자증권 박준범 책임연구원은 “단기 매매 한계를 가진 개인을 제외하고는 700선을 지키려는 매수주체를 지목하기 힘들다”며 “펀더멘털 관련 악재가 지금부터 시작일 수도 있어 당장 지지선을 그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큰 그림이 어떻게 풀려나가는지를 지켜봐야 하며 일단 660선까지의 추가하락 가능성이 높아져 중기적 저점인식에 기반한 매수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미래에셋운용 이종우 전략실장은 “700선을 잠깐 깰수는 있지만 크게 내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그러나 700선 밑에서 오랜 시간 머물 경우 실망매물 등이 나오며 피곤해질 수는 있다”고 전망했다. 이 실장은 “지수관련주나 개별주 모두 시세연속성이 떨어져 주식투자가 적당하지 않은 시기”라며 “700선 가격 메리트를 논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대신경제연구소 조용찬 수석연구원은 “한국은행의 10월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에 따른 시중 유동성 흡수와 건설, 중소기업 등의 경기침체 우려감이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지난 5월 금리인상이후 증시가 3개월 정도 조정을 받아왔다”며 “금리인상이 내수위축을 유발하고 증권 기대수익도 내려 투자자의 장기적 체계적 위험 회피 심리를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한정진기자 jj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