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단풍

"오∼매 단풍 들것네/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러오아/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 보며/오∼매 단풍 들것네//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 단풍 들것네." 단풍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누이를 보며 추석거리 걱정에 잠시 잊었던 자연의 조화에 새삼 놀라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이 시는 김영랑의 작품이다. 추석과 함께 단풍소식도 들린다. 올 가을 단풍은 24일께 설악산을 시작으로 오대산 치악산 지리산 내장산 등지로 점차 내려갈 것이라고 한다. 오색의 단풍이 하도 고와 풍악산(楓嶽山)이라는 별칭을 얻은 금강산의 단풍은 설악산보다 하루 앞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단풍의 절정기는 설악산이 10월 중순,내장산이 11월 초로 예상되는데 이 기간중에는 일교차가 크고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그 빛깔은 매우 고울 것이라는 소식이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단풍은 특히 그 색과 빛이 빼어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웬만한 산이면 연례행사로 한마당 '단풍축제'를 여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산의 정취도 깊어 단풍속 산자락 마다에 있는 산사에서 긴 호흡을 하고 나면 심신이 개운해짐을 느낀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오타와를 거쳐 나이애가라 폭포에 이르는 수백㎞의 메이플 로드나 일본의 다키가에리 계곡 등도 명소로 꼽히지만 우리네 단풍과는 그 정서가 사뭇 다르다. "가을은 모든 산에 단풍이 눈부시고 밤에는 달 밝고 벌레소리 흥겨우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박세당/산림경제)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윤동주/소년)고 가을 단풍을 노래한다. 소설가 이원수는 "불타오르듯 빠알간 단풍을 바라보는 동안은 유유관조의 멋이 무던해 나도 모르게 살아있다는 맛이 야곰야곰 피어올라 실상은 가렵지도 않은 사타구니 근방을 긁어본다"고 했다. 올 가을 단풍철엔 작심하고 어느 산으론가 훌쩍 떠나 홍진에 찌든 때를 벗겨보면 어떨까.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