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e & Innovation] '한국 대표컨설팅' 꿈 익어간다

"하이닉스에 8백18억원 등 부실 대기업·금융회사 매각수수료 및 컨설팅 비용에 모두 1천3백42억원!" 이달 초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선 우리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처럼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외국계 컨설팅업체에 내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문제를 제기한 박병석 의원(민주당)은 대안으로 '경쟁력있는 국내 컨설팅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우리 컨설팅업체를 키우자는 이런 주장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구름잡는 얘기였다.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맥킨지나 보스턴컨설팅(BCG) 등에 비해 국내 컨설팅업체들은 우리 대기업조차 외면할 정도로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격 부담만 적다면 이왕이면 '이름값하는' 외국계 업체들에 맡기고 싶어하는 기업들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판도는 바뀌고 있다.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노하우를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 하나 둘 독립,창업하면서 외국계 일변도는 옛말이 됐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업체만 꼽아도 네모파트너스 N플랫폼 이언그룹 맥큐스 ABL 클레이먼 마케팅랩 등 10여개사에 이른다. 덩치면에선 외국계 서울사무소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업체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모파트너스는 전략,인사관리,6시그마 등 3개 분야를 합해 1백여명의 컨설턴트를 거느리고 있다. 모니터 출신으로 왓슨와이어트 한국대표를 지낸 정택진 사장(43)은 "미국의 스톤브리지테크놀로지(SBTI)가 합작을 제의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N플랫폼도 임직원이 51명으로 규모면에선 궤도에 올랐다. 맥킨지 출신들이 중심이 돼 만든 이 회사는 외국계의 독무대였던 금융부문,그 가운데 특히 성과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상준 사장(35)은 "국내 금융은 내수산업"이라며 "실행력면에서 국내 회사가 나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결정적 약점이었던 글로벌 네트워크 문제에 가닥을 잡은 것도 이 업체들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ADL출신인 박찬구 대표(40) 등이 만든 이언그룹의 경우 최근 유럽계 LEK컨설팅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중국에서의 노하우가 많고 사무소까지 두고 있는 LEK컨설팅을 통해 아시아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이언은 이에 앞서 미국의 SRI사와도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박 대표는 "다국적 업체들이 자랑하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도 해당 전문가를 글로벌 네트워크 내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각 지역 대표업체들과 제휴함으로써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클레이먼(대표 정형지)은 자체적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경우다. 지난해 창립했지만 이미 홍콩과 샌프란시스코에 지사를 설립했다. 다국적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외국계 출신 컨설팅 부티크들이 잘 나가고 있는 이유다. 맥큐스의 경우는 공장 효율성 제고가 전문 분야다. MIT대 원자력 공학박사인 유찬 사장(37)은 "다국적 회사는 한국에서의 실행 경험이 적고 국내 생산성 전문 업체는 부분적인 개선에 그치고 있다"며 "회사 전체를 보는 CEO의 관점에서 생산공정 최적화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ABL(대표 진태준)의 중점 분야는 이동통신과 보험 등이다. 기능적으로는 마케팅 관련 컨설팅이 80%에 달한다. 2000년엔 아이리얼리티로부터 6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마케팅랩(대표 이승훈)은 회사명 그대로 마케팅전략에서부터 온라인을 활용한 e마케팅까지 마케팅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 있다. 이 업체들의 '선전'에 비판적 시각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 근무 당시 맺은 인적 네트워크가 사업의 기반인만큼 중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수인재 확보 경쟁에서 외국계 업체에 비해 여전히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있다. 진태준 ABL대표는 이와 관련,"수년 내에 다국적 컨설팅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회사가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컨설턴트 교류 등 실질적인 협력이 이뤄지고 있고 대형사로의 통합 방안도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