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슈퍼우먼은 없다 .. 이병훈 <남양알로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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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갔다.
일과에 쫓기는 직장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연휴였지만,남정네들이 한가하게 발 뻗고 쉬는 동안에도 차례상이며 손님치레로 동동거려야 하는 주부들에게는 더없이 고단한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추석날 아침,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칠순의 노모는 새벽부터 일어나 손수 차례상을 준비하셨다.
몇 년째 차례상을 차려본 며느리가 좀 쉬시라고 만류를 해도 막무가내셨다.
어머니는 평생 사회활동을 하면서 여느 남성 못지않게 바깥일로 바쁘셨지만,일 때문에 살림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기는 죽기보다 싫어하신 분이었다.
처음 시집 올 때,시댁 어른들은 공부 많이 한 며느리를 그리 탐탁해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배운 여자들은 밖으로만 나돌고 살림은 소홀히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새색시 시절,시어른 한 분이 어머니를 빗대어 "미국 유학 갔다 온 여자,아무짝에도 못쓰겠더라"고 대놓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서러움이 복받쳐 어머니는 남모르게 우셨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대우가 바뀐 건,집안 대소사 때마다 부엌칼 서너 자루를 앞치마에 싸갖고 내려가 혼자서 서너 사람 몫의 일을 너끈히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나서부터였단다.
옛 이야기를 하시며 어머니는 웃으셨지만,우리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평생 슈퍼우먼이 되기를 강요받으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인생이 새삼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사회활동을 한다는 건,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세상과 나누고 스스로의 꿈을 성취해 나가는 기쁘고 소망스런 과정이어야 한다.
직장에서는 주부라는 이유로,집안에서는 일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전긍긍 눈치를 봐야 한다면 사회활동은 기쁨이 아니라 이중의 억압이 되고 만다.
나는 내 딸이 슈퍼우먼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남편 월급으로 먹고 살 만하다고 해서 스스로 집안에 안주하는 안이한 여성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배운 사람'이 된다는 건,그만큼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바칠 책임이 커진다는 뜻이다.
'배운 여자'의 능력을 사장시키지 않는 사회에서,'배운 여자'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는 여성이 되기를 소망하며 추석날 아침 나는,아직 어린 딸의 손을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