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4일자) 청약미달 빚은 일본 국채공매
입력
수정
지난 20일 실시된 일본 국채 경매에서 사상 처음으로 청약 미달사태가 발생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중남미에서나 생기는 일로 치부되던 사태가 일본에서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국채 경매를 시작한 지난 89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하니 세계 금융계가 숨죽이며 사태의 전말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이날 입찰이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것이라고는 하더라도 청약주문이 매각 물량의 1.5배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왔던 그동안의 추세를 감안하면 불과 88% 정도의 물량만 소화된 이번 결과는 일본 정부에 큰 타격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야미 일본은행 총재가 "시장 조정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며 수습에 나서기는 했지만 도쿄증시 주가가 폭락하고 엔화가 달러당 1백23엔까지 뛰는 등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간단치 않다.
특히나 이번 국채는 일본 금융기관이 보유한 불량채권 매입을 위한 재원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일본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 금융가에서는 이번 미달사태를 하루 전인 19일 일본은행이 최대 8조엔어치의 시중은행 보유주식 매입계획을 발표한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식 매입 계획이 국채 투자자들의 신뢰를 근본에서부터 흔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야말로 원초적인 요인이라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일본은행의 주식 매입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도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일자 사설에서 "일본은행의 주식매입은 자포자기에 지나지 않으며 필시 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고 영국 타임스지도 "제2의 경제대국이 이제는 바나나공화국이 됐다"는 사설을 게재할 정도였다.
어떻든 국채발행을 통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겠다는 일본 정부 계획과 시중은행 보유주식을 사주는 방법으로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일본은행의 계획은 시행해 보기도 전에 위기에 봉착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위기상황이 강건너 불이 아닌 것은 불문가지다.
아시아지역 전체를 부진의 늪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도 이해관계가 직결돼 있다.
더구나 엔화의 급등락이 원화 가치에도 급변을 초래하는 등 우리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이즈미 내각은 이달말께 부실채권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금융불안 해소를 낙관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