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가 바라본 모순투성이 인간사..김성동 새소설 '염소'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이 '염소'(청년사,7천5백원)라는 소설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글이라는 것을 써서 한 세상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나서 처음 써본 것'이다. 지난 80년 '광주 5.18'직후에 '죽고 싶지 않았던 빼빼'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됐던 작품이다. 세상에 나온지는 20년이 약간 넘은 셈이다. 그러나 당시 책을 냈던 백제출판사는 책을 내자마자 문을 닫았고 초판본도 얼마 발간하지 못해 이번에 나온 것이 사실상 초판이나 다름없다. 책 속의 일부 문구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약간 손을 봤다. 이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하다. 펜으로 그려진 삽화들도 비극적으로 승화된 글의 서정을 한껏 살려내고 있다. 작가가 발굴해 낸 순우리말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다루고 있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품은 불과 여덟달을 살다가 비정한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흑염소 '빼빼'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을 다루고 있다. 빼빼의 눈으로 본 인간세상은 모순 투성이다. 증오와 불신,탐욕과 시기가 난무하며 살아 있는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하다. 빼빼가 죽기 전 독백처럼 내뱉는 "사람들은 어째서 살아 숨쉬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요"라는 말 속에는 인간세상에 대한 질타와 함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갈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낯선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결국엔 비참한 종말을 맞는 빼빼의 이야기는 암울했던 80년 당시의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늙은 염소가 빼빼를 향해 "그땐,싸우는 거다.어차피 우리는 죽는다"라고 말한 대목은 5·18 당시 계엄군을 맞아 끝까지 저항했던 시민군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5·18 직후 글쓰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막막함과 자괴감이 이 작품이 나온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빼빼의 눈을 통해 우화적으로 표현했던 80년대의 살벌한 풍경이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말 "새로운 세기를 맞아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며 웃고 떠들어 쌓는데 세계는 여전히 지옥일 뿐"(작가후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