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니아] 곽정소 KEC 회장 .. 스피드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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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곽정소(47)회장은 스피드를 즐긴다.
학창시절 육상 1백m 선수였다는 그는 뭐든지 빠른 것을 좋아한다.
글라이더도 순간 속도 시속 2백km가 넘는 스피드때문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98년에는 잠시 회사를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있는 민간조종사 학교에서 항공기 운항 면허도 땄다.
99년 3월에는 직접 세스나기를 몰고 전북 고창에서 제주도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파일럿을 동경했지만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는 창업자인 선친 곽태석회장이 지난 1981년 갑작스레 작고하면서 스물여섯에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대신 프라모델(사물을 실제 크기보다 축소해놓은 플라스틱 모형)을 만드는 것으로 욕구를 채운다.
항공기 배 자동차 등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이 전공이다.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그는 장난감 조립하기를 좋아했다.
중3때는 아마추어와 프로선수들이 출전한 전일본 모형창작물 경진대회에서 자신이 직접 조립한 배를 가지고 경정(競艇)부문에 참가,2등을 차지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한 몫했다.
경쟁을 즐기면서도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는 승부근성은 그의 경영 스타일이기도 하다.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이 트레이드 마크.
KEC를 2010년까지 소신호 소자(SSTM)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려놓는 게 목표다.
현재는 일본 롬사에 이어 2위다.
일본 무사시(武藏)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할 당시 내연기관에 특히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엔지니어답게 항공기의 날개와 몸체뿐만 아니라 엔진도 직접 조립한다.
가장 비싼 소장품은 미 전투기 F15.
실제품의 12분의 1크기인 축소모델이긴 하지만 길이만 2m60cm다.
출력 8마력의 엔진도 갖추고 있어 50m길이의 활주로만 있으며 실제로 뜬다.
직접 날려보기도 했다.
96년도에 만든 이 모형은 당시 가격으로 1천만원이 넘는다.
매일 한 두시간식 투자해 3개월이 걸렸다.
회사 26층의 회의실에 전시돼 있다.
한 때는 서울 양재동 회사 근처에 아예 10여평 크기의 작업실을 차리기도 했다.
짬짬히 들러 몇 시간씩 "무아지경"에 빠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지난해 12월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한남동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지하실에 작업실을 차렸다.
비행기 15대를 비롯해 족히 1백점이 넘는 작품이 보관돼 있다.
"저는 결코 수집가(collector)는 아닙니다.소유에 따른 만족감이 목적이라면 돈을 주고 사면 되죠.아직 한 번도 남이 만든 물건을 사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프라모델을 만드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없어지는 맛" 때문이다.
"내 자신이 직접 만든 비행기를 날릴 때의 짜릿함을 상상하며 나사 하나 하나를 조입니다.원격 조종기로 작동시키지만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마치 조종간에 앉아 있는 듯한 긴장과 스릴를 느낍니다.물론 단 한 번의 조작 실수로 공중분해될 때도 있죠.경영도 마찬가지 아닌가요.철저히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산했더라도 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는 회사 근처에 아예 프라모델 가게까지 냈다.
상호는 자신의 영문이름 "J.S.곽"을 본 딴 "제이즈(J"S)".
가게를 차린지 10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그는 "경영적 관점에서 보면 퇴출대상 1순위이지만 어린시절 장난감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어서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