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 성공사례] '크로바케미칼'..직원복지 확대.無감원..흑자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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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들던 지난 1994년 1월.강선중 크로바케미칼 회장은 책상에 앉아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강 회장은 해외투자를 어디에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강 회장은 15년전 방문했을 때 친절하게 대해줬던 필리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때 필리핀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았던 것."바로 이곳이다"며 손벽을 친 강 회장은 책상에 있던 지구본을 보면서 필리핀을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게다가 제품의 상당량을 동남아지역으로 수출해온 만큼 필리핀이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강 회장은 곧바로 팀을 구성해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 시장조사는 3년동안 계속됐다.
강 회장은 "당시 시장조사를 오래할 필요가 있느냐는 직원들의 지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철저한 시장조사 없이 현지투자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강 회장은 필리핀을 샅샅이 뒤졌다.
현지 업체의 기술수준,국민성,노사관계,용수사정,공무원을 대하는 관행,식사예절 등등.이렇게 하면서 3년중 3백여일을 머물렀다.
그동안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횟수도 50여회가 넘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듯 해외투자도 현지에 대한 정확한 사전조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크로바케미칼은 1998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라구나공단에 2백50만달러를 단독투자,크로바플라스틱필스를 설립했다.
공장 규모는 부지 6천㎡ 에 연건평 4천㎡. 강 회장은 공장을 가동하면서 난관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순박한 국민성으로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가르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안돼 모든 설비부품을 국내에서 보내야만 했다.
"볼트 한 개를 구하기 위해 마닐라 시내를 뒤져야 할 정도였습니다.
부품을 찾는다해도 기술자가 없어 국내에서 기술자가 가야만 했고요"
이와함께 당시 필리핀에서는 노사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현지화를 통해 이같은 문제들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현지인들을 고급기술자로 육성하고 핵심업무를 맡겨 주인의식을 심어줬다.
우수 사원에게는 한국견학 기회를 제공,한국회사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또 근로자들에게 작업복을 제공하고 야참도 줬다.
연말에는 특별보너스와 함께 선물도 마련했다.
그러면서도 급여는 인근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시켰다.
특히 해고가 잦은 현지풍토에서 탈피,해고를 하지 않았다.
이같은 직원들에 대한 사랑은 인근 공장들이 겪어야했던 노사갈등을 단 한 차례도 겪지 않는 요인이 됐다.
"이직이 없답니다. 우리회사 입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같은 현지화의 성공으로 진출 이듬해부터 매출이 늘어나 흑자경영을 달성하는 등 사세가 커지기 시작했다.
필리핀 공장은 현재 24시간 풀가동되고 있다.
필리핀 공장에서는 18.9ℓ 들이 생수용기와 화공약품용기를 생산한다.
필리핀내 판매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홍콩 등 동남아지역으로 수출한다.
크로바케미칼이 생산한 제품은 국내보다 동남아지역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